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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구본창 사진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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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동영상은 joongang.co.kr [최효정 기자]

바위 아래 작은 샘물도 흘러서

바다로 갈 뜻을 가지고 있고,

뜰 앞의 작은 나무도

하늘을 꿰뚫을 마음을 가지고 있다.

- 작가 미상, 『가언집』 중에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던 나는 짧았던 직장생활을 버리고 사진을 공부하러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전혀 다른 인생으로 발을 내디디며 내가 택한 길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자주 반문하곤 했다. 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뜻깊은 기간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불안한 마음도 컸다. 그럴 때마다 떠올리던 한시(漢詩)였다.

 작은 샘물이 모여 강물이 되고 강물은 흘러서 바다로 간다는 사실, 작은 나무 한 그루도 수직으로 곧은 마음을 보여준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진리이다. 그 단순한 진리 속에서 나는 내가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작은 일부터 만족을 하고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것을.

 귀국하기 전, 친했던 독일 친구가 내가 좋아하는 글을 써 달라고 했다. 무슨 의도인지 의아했지만 별생각 없이 이 글귀를 손 글씨로 써 주었다. 출국 하루 전, 그 친구가 선물을 들고 나타났다. 뜻밖에도 내가 써준 글이 인쇄된 티셔츠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본인이 그림 그리듯 따라 그린 후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인쇄한 천을 티셔츠 위에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만든 것이었다. 내가 명심하고 싶었던 글귀가 쓰인 티셔츠를 입을 수 있게 만들어 온 이방인 친구의 따듯한 우정은 나를 감동시켰다. 지금도 어려울 때마다 펼쳐 보며 내 마음을 가다듬는다.

구본창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