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색채의 제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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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릴 하나의 고질』-. 관료주의에 대한 최초의 정의를 내린「프랑스」중농주의자「벵상·드·구레이」등의 이 경고는 본질을 꿰뚫은 지언이라 할 수 있다.
관료나 관료주의를 즐겨 소설의 소재로 다룬「발자크」로부터, 1968년 영국하원에서『관료제의 부단한 팽창』을 따진 보수당의 동의, 그리고 이번의 미대통령선거 기간 중에 실시된「양켈로비치」여론조사에 나타난『중앙정부의 비대화에 다른 국민의 무력감과 환멸』에 이르기까지, 관료주의에 대한 비난은 가히 그 고전적인 정의를 그대로 뒷받침하고 있다.
내무부가 3일 올해 내무행정의 역점을 관료풍토 개선에 두겠다고 밝힌 것도 이 나라 공무원사회에 권위주의적 관료 행 태의 독소가 아직도 뿌리 깊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관료주의의 내용으로는 흔히 군림 적 태도·번문욕례·비밀주의·획일주의·법규빙자의 무사안일주의·창의성의 결여 등 이 지적되고 있으나 그 중에서도 시민들에게 가장 큰 불쾌감을 주는 것은 다름 아닌 공무원들의 국민에 대한 거만스런 태도라 할 수 있다.
원래 이 나라의 관료들은 구 왕조시대이래 특별히 이 군림 적·권위주의적인 처신의 폐습에 젖어 왔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위로는 삼경육공으로 부 터 아래로는 수령방백과 아전에 이르기까지 백성에게 거드름을 피우는 것을 능사로 알던 관인 적 지배체제와 일제의 식민 적 관료지배의 누적은 관존민비의 의식과 관료주의의 병폐를 유산으로 남겼다.
그런데 해방 30년, 민주주의를 국가이념으로 하는 오늘날에도 이 나라의 행정풍토를 보면 그 기구와 행정기술의 발전·개선에도 불구하고 그 고질이라 할 관료주의적 잔재만은 상당부분 그대로 남아 있어 공무원의「공복의식」이 충분하다고 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터다.
사실 서정쇄신작업이 본격화한 지금에 있어서도 민원창구에서 시민들에게 공연히 심술부리거나 걸핏하면 짜증스런 표정을 짓는 공무원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딱한 사정을 호소하러 간 무명의 시민 앞에서 회전의자나 돌리면서 딴전을 피우거나 거만을 떠는 공무원은 과연 한 사람도 없는 것일까.
한국관료의 권위주의적 성격의 강도는 56%에 이른다는 최근의 한 실증적 연구조사는 깊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미국의 32%, 영국의 33.5%에 비하면 우리 관료의 권위주의적 성향이 얼마나 강한가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이 같은 권위주의적 관료풍토는 결코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며 또 그들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행정기능의 팽창과 행정에 있어서의 전문적 요소의 증가 등 관료제도 자체의 비대 요인과 함께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의 영향도 크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가정·직장·정당·사회단체·지성사회 전반에 걸쳐 권위주의적 의식이나 행 태를 깨끗이 없애고, 그 결과 자유롭고 민주적인 분위기와 사회기풍이 바로 세워져야만 공무원들의 관료주의적 행 태도 자연히 순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무원들의 권위의식이나 관료주의적 행 태를 바로 잡는 일은 어디까지나 장기적이고 다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내무부가 앞으로 공무원의 비위 외에 관료주의적 고 자세도 집중 감사하여 처벌하겠다고 한 조치는 물론 필요하나 이에 앞서 행정사무의 대폭적인 간소화가 긴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하였으면 한다.
이와 함께 민간의 시민의식을 높이고 자율적 영역을 눌리는 한편, 행정의 통제기능과 영역을 극소화하기 위한 장기적인 노력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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