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인상의 「가이드·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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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개별경제의 임금구조는 제각기 다른 역사성을 가지므로 임금정책이 지향하는 바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비록 생산요소간의 비용·수익에 일정한 법칙성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은 제요소비용의 결정기구가 자유롭게 시장기능에 따라 움직일 때에만 적응될 수 있다.
지금 논의의 초점이 되고있는 국내 임금문제만 하더라도 본질의 파악이나 접근하는 방식에서 커다란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것은 이런 특수성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마디로 우리의 임금구조는 그 발전 기반부터 기형적이고 제도적·인위적으로 지나치게 왜곡되어온 탓으로 정상상태가 아니다. 임금이 정상적인 상대가격의 변화에 순응하여 탄력 성있게 움직인 경험은 아직 한번도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그 동안의 경제변화가 급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득의 증가나 배분구조도, 그리고 그것들을 지배하는 기본「룰」도 제대로 합리적으로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 장기간에 걸친 고율「인플레」의 항시적 존재나 조세 등을 통한 소득이전 속도의 가속화추세도 모두 이런 상황을 촉진하고있다. 경제개발의 급격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광범한 저임금지대가 보편화되어 있거나 산업간, 업종간 또는 기업규모별로 현격한 임금격차가 존재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 동안의 임금정책은 자본축적을 위해 사실상 이런 임금구조를 방임하는 형식으로 일관되어 온 셈이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정부가 새롭게 임금의「가이드·라인」을 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임금인상의 상한을 처음 지정한 점에서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물가상승을 연10%선을 유지하기 위해 과도한 임금인상을 억제한다는 방침이 표명되었다. 알려지기로는 실질 인상률 5%에 물가 상승률 10%를 고려하여 연15∼18%선에서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런「가이드·라인」의 실정이 합리화되려면 무엇보다 임금과 물가의 상관관계가 규명되어야 한다. 과연 국내물가가 지나친 임금상승 때문에 비롯되는가 도 따져야하고, 다른 공급·수요측면의 제 요인을 제쳐놓고 임금인상만 억제함으로써 「인플레」규제가 가능한가를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제시된「가이드·라인」이 독과점 품목에 한정된다고는 하지만 이런 형태의 정책개발이 일반 임금구조에 미칠 파급영향을 고려하면 결코 가벼이 보아 넘기가 어렵다.
독과점품목의 가격인상 압력을 줄이는 방안은 임금억제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제도적·법적 뒷받침도 있고 강력한 행정력도 유효한 수단이 아닌가.
이왕 물가안정을 위해서 대금의 인상률까지 정책적으로 유도할 정도라면 임금 외의 다른 여러 요소 비용도 모두「가이드·라인」을 정해서 그것을 견제하고 억제하고 해야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적어도 경제정책사상 성공한 예가 없다.
거듭 지적하거니와 지금 임금정책에서 우선되어야 할 것은 일부업종의 지나친 임금압력해소가 아니라, 수준이하의 광범한 저임금지대를 점차적으로 해소하는 일임을 강조한다.
일부 수출산업의 지나친 임금상승압력이 국제경쟁력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나 이는 전체 임금구조에 비하면 극히 부분적인 현상임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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