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유통질서를 바로 잡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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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신춘의 화랑가에 새바람이 일고 있다. 유통구조에 체계를 세우고, 이윤추구만이 아닌 문화발전에 보탬이 되는 사업을 하기 위한 한국화랑협회의 발족이 그것이다. 그러나 화랑들의 영세성은 여전하고, 각 화랑의 이해가 걸려 있는 일이라서 그 앞날엔 많은 어려움이 예견되는 것이 사실이다.
협회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은 꽤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지난봄의 호황 뒤 화랑에 과세 인 상설이 나돌고 일반의 비판이 일기 시작한 직후인 지난해 8월부터였다. 『이대로 무계획한 상행위를 계속하면 예술발전에 도움이 못될 뿐더러 화랑자체가 발붙일 땅을 잃게된다』는 자성에서 대책을 의논하게 된 것이다.
당시 대체적인 규약과 회장까지 내정되었다가 화랑들간의 이해문제와 지난가을의 불황에 눌려 출발을 미뤄 왔었다. 그러다가 작년 12월27일 총회를 갖고 지난10일 첫 임원회의를 열어 정식으로 발족한 것이다.
협회의 창립회원은「글로리치」·동산방·명동·문화·소·서울·조선·조형·진·태인· 현대·희 화랑의 12곳. 연2회 이상 기획전을 하는 화랑들. 회장은 명동화랑의 김문호 씨가 맡기로 되었다.
화랑들이 직면해있고 따라서 협회가 해야할 가장 급한 문제는 유통거래의 일원화. 화랑에 따라 또는 화가에 따라 그림의 값과「마진」이 각각 다른 것이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그림의 값을 올리는 구실이 되곤 했다. 협회는 앞으로「3(화랑)·7 (화가)제, 또는「4·6」제로 화가와의 거래를 통일할 계획을 밝히고 있다.
둘째는 현재 화랑가에 많이 나들고 있는 위작의 축출문제. 회원화랑들은 판 물건이 위작임이 밝혀지면 곧 반환해 주거나 위작이 아니라도 고객이 원하면 일정한 조건으로 그림을 다시 사주는 보증제도를 구상하고 있다.
이밖에도 협회전, 협회지, 외국 화랑협회와의 국제교류, 애호가를 위한 미술강좌들이 협회가 구상하고 있는 사업계획이다. 협회전에선 회원 화랑의 그림들을 서로 교환할 수 있고 『객관적인 가치를 견주어 볼 수 있다는데서 미술품 경보(auction)의 기반이 될 수 있을 것』 이라는 김문호 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어려움은 많다. 화랑의 전체적인 규모가 영세해 협회의 사업을 위한 재원을 확보하기 어렵고, 협회가 계획한 일들은 화랑 각자의 이익에 어긋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평론가 이일씨(홍대교수)는 서구의 화랑들을 4종류로 분류하면서 한국의 화랑들의 역할이 다양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즉 ①확실한 안목을 가지고 전속 화가를 계약하고 있는 화랑 ②자유계약에 의해 화랑의 특색을 지켜 나가는 곳 ③기획전·「그룹」전을 통해 여러 화가의 발표장 역할을 하는 화랑 ④대여 화랑 중 우리 나라는 ③④에 해당하는 화랑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화랑이 화가와 애호가 사이의 균형을 유지해 주고, 좋은 화가를 양성하는 본래의 역할을 다하려면 협회 등 대 사회기관의 활동이 활발해야 한다는 것이 이교수의 설명이다.
현재 미술상들의 단체로 화랑·표구 협회(회장 이효우) 와 고미술협회(회장 송종근)가 조직돼 있으나 그 활동은 회원상호간의 친목에 그쳐왔다. <지영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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