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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선장 사고 직후 통화 … "승객 탈출 지시 안 한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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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7일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 임시 합동분향소에 추모 행렬이 이어지면서 대책본부가 준비한 국화 12만 송이도 동이 났다. 조문객들이 국화 대신 ‘근조’ 리본을 헌화 테이블에 올리고 있다. [오종택 기자]

안산 단원고 2학년 박모(17)군이 휴대전화로 세월호 침몰 직전의 급박한 상황을 동영상으로 찍을 때 세월호 선원들도 선사인 청해진해운 제주 본사 및 인천사무실과 연락하며 대책을 숙의했다. 그러나 선원들이나 선사 측이나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우물쭈물했고 결국 대규모 참사를 막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검경 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세월호 운영 선박회사인 청해진해운 본사 소속 A부장은 세월호가 침몰 중이던 지난 16일 오전 9시10분 이준석(69) 선장에게 휴대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선장과의 통화에서 선사 측은 승객을 대피시키라는 지시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오전 8시55분 세월호가 제주 해양교통관제센터(VTS)에 구조 요청을 한 데 이어 오전 9시 1등항해사 강모(42)씨가 청해진해운에 상황보고를 한 직후였다. 강씨는 침몰 보고를 중간 간부에게 했고, 이 간부는 임원에게 알렸다. 합수본부는 청해진해운 김한식(72) 대표에게도 상황이 보고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합수본부 측은 “회사가 이 선장에게 어떤 상황인지를 주로 물었으며 승객들을 탈출시키라는 지시를 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익명을 원한 선박 전문가는 “선사 측 과실로 사고가 나면 보험금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며 “선사 측이 과실 여부를 미리 파악하는 데 신경을 쓰다가 승객에 대한 조치를 못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법무법인 세창의 김현 대표변호사는 “회사 측이 승객들을 그대로 두고 승무원들에게 탈출하라고 지시했거나 묵인했다면 유기치사 혐의의 공범 또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합수본부는 또 근무복을 입고 있던 기관장 박모씨가 해경 경비정이 도착하자 근무복을 벗고 파란색 반팔 티 위에 구명동의를 착용한 상태에서 맨 처음으로 구조된 사실을 확인했다. 항해사 1명은 트레이닝복과 속옷 차림으로 나와 구조를 기다리다 다시 선실로 돌아가 겉옷을 챙겨 입고 나온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박씨는 선원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며 “‘급박하게 탈출했다’는 승무원들의 증언도 거짓이라는 단서”라고 밝혔다.

 선박 안전검사 등을 담당하는 한국해운조합에 대한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해운조합이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 등에 로비한 정황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조합이 해운사들에 보험금을 지급한 뒤 리베이트를 챙긴 흔적도 찾았다고 한다. 이번 수사와 관련해 주성호(57) 한국해운조합 이사장은 지난 26일 사의를 표명했다. 주 이사장도 출국금지 대상이다.

 ◆“유 전 회장, 사진 팔아 500억 비자금 의혹”=청해진해운의 모회사(‘천해지’) 감사를 지낸 S회계법인 소속 김모(51) 회계사가 세모그룹 계열사 15개 중 9개의 외부감사를 도맡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애초부터 감사가 부실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김씨가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의 재무관리를 맡아온 핵심 인물이라고 판단해 지난 26일 서울 강남 사무실과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금융감독원 공시자료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10여 년간 청해진해운의 회계감사를 맡았다. 특히 2005~2008년 청해진해운의 모회사인 천해지의 감사로 재직했다.

검찰은 또 유 전 회장 측이 개인 명의로 컨설팅 회사를 만들어놓고 청해진해운 관계사들로부터 컨설팅·특허·상표권 사용 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거액을 송금받아온 사실을 확인했다. 조사 결과 ‘붉은머리오목눈이(대표 유병언)’와 ‘SLPLUS(대표 유대균)’ ‘키솔루션(대표 유혁기)’ 등은 실체가 없는 페이퍼컴퍼니였다. 검찰은 이들 유령회사에 지주회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와 문진미디어·천해지 등이 2010~2013년 120여억원을, 세모·다판다·노른자쇼핑이 100억여원을 지급한 내역을 확인했다.

 중앙일보 기자가 27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키솔루션 사무실을 찾아갔더니 해당 장소에는 유 전 회장의 장남 대균씨 측근이 운영하는 초콜릿 판매점이 있었다. 붉은머리오목눈이의 경우 법인 등기도 안 돼 있었다. 유 전 회장 등의 비리를 수사 중인 인천지검 특별수사팀(팀장 김회종)은 27일 유 전 회장 동생 등 가족을 추가로 출국금지했다. 검찰 관계자는 “조사 대상자 중 일부는 보복 등을 우려해 가명조사를 원하거나 조사 사실 자체를 비밀로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27일 유 전 회장이 계열사 등에 자신의 사진을 판매해 5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글=이가영 기자 , 목포=신진호·최경호·노진호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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