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지나쳐 짐 됐나 뚜껑 여니 ‘사랑과 전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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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호 24면

상반기 첫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 ‘태양왕’의 막이 올랐다. ‘노트르담 드 파리’ ‘십계’와 함께 프랑스 3대 뮤지컬로 꼽힌다는 이 작품은 ‘십계’ 제작팀이 2005년 600만 유로를 들여 만들었다. 초연 당시 주변국에서 ‘태양왕’ 관람객을 위한 특별 버스를 운영했을 정도로 인기를 끈 화제작이다. 이번 한국 공연은 아시아 최초로 성사됐다.

뮤지컬 ‘태양왕’ 4월 10일~6월 1일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된 베르사유 궁전을 건설한 역사상 가장 화려한 시대, 스스로를 ‘태양왕’이라 칭하며 절대 왕권을 휘두른 루이 14세에게 헌정된 70억 대작이라니 얼마나 압도적인 무대일까. 뮤지컬 ‘모차르트’ ‘엘리자벳’ 등으로 유럽 뮤지컬 흥행을 선도하며 관객의 눈높이를 한층 끌어올린 EMK뮤지컬이 ‘노트르담 드 파리’를 공동제작한 마스트엔터테인먼트와 다시 손잡고 만든 신작인 만큼 프랑스 뮤지컬 특유의 스펙터클을 제대로 보여줄 것이라 멋대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드라마가 약한 프랑스 뮤지컬이지만 한국 관객을 위해 러브 스토리와 갈등 구조를 강화해 치밀한 구성으로 각색했다니 유럽 왕실의 흥미진진한 야화(?)를 엿볼 기대도 컸다.

선입견 가득한 시선으로 마주한 무대는 몹시 낯설었다. 절대 왕정을 구가한 루이 14세의 이른바 ‘일대기’에는 “짐이 곧 국가다”며 권력을 휘두른 위엄도, 스스로 발레 무대에 서며 ‘서양 춤 역사상 최초의 발레스타’로 기억되는 그만의 예술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시녀 신분으로 루이를 평생 짝사랑하다 결국 그의 마지막 연인에 등극한 프랑수아즈의 회상이라는 액자구조 탓일까, ‘절대군주의 일대기’는 한 여인의 시선에 머문 한 남자의 ‘사랑과 전쟁’이라는 비좁은 세계관 안으로 쪼그라들어버렸다.

다섯 살 어린 나이에 즉위해 대비와 마자랭 추기경의 오랜 섭정을 거쳐 성년이 된 루이. 정략결혼을 추진하던 마자랭의 음모로 첫사랑 여인 마리 만치니를 잃자 슬픔을 추스르고 강력한 군주가 될 것을 선언하지만, 거듭된 음모로 미스터리의 여인 몽테스팡 부인을 만나 향락에 빠져 살다 자신을 진심으로 염려하는 시녀 프랑수아즈와 마지막 사랑을 약속한다.

극의 두 축이라면 권력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과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루이의 여정이다. 그러나 ‘절대군주’에게 인생의 굴곡 따위는 대수롭지 않았던 걸까, 정치도 사랑도 도무지 긴장감이 없다. 별다른 갈등 없이 여자를 바꿔가는 왕의 행보가 느슨하게 이어질 뿐.

예상대로 드라마가 약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드라마보다 볼거리와 들을거리를 앞세우는 프랑스 뮤지컬의 특성상 드라마는 과감히 잊기로 한다. 탄탄한 스토리 라인을 따라 극이 전개되고, 음악으로 감정선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뮤지컬의 패턴이라면, 단편적으로 제시되는 극적 상황을 음악 자체로 풀어가면서 다양한 볼거리를 전개하는 것이 프랑스 뮤지컬의 매력임을 ‘노트르담 드 파리’를 통해 확인했기 때문이다. 환상적인 무대 위에서 아름다운 노래와 화려한 춤, 아찔한 아크로바틱이 어우러지는 한바탕 향연을 위해 드라마가 양념처럼 존재하는 쇼뮤지컬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볼거리’와 ‘들을거리’. 그러나 절대 군주가 군림하던 바로크 시대의 무게감이 깃들지 않은 비주얼과 음악은 드라마의 부재보다 더 당황스러웠다. 고딕 성당의 위엄을 상징하는 거대한 벽을 모티브로 아크로바틱 댄서들의 묘기와 집시들의 누더기 의상만으로도 예술성이 넘쳐 흘렀던 ‘노트르담 드 파리’에 비해 이렇다 할 무대 메커니즘 없이 베르사유궁의 조악한 영상에 의존한 무대와 화려하되 우아하지 않은 의상, 왕이 노래할 때마다 오르내리던 볼품없는 리프트만이 뇌리에 박혔다.

오페라 서막을 연상시키는 클래시컬한 서곡이 ‘태양왕’에 걸맞은 스케일의 장중한 음악에 대한 기대를 불렀지만 막상 막이 열리니 가벼운 팝 음악이 무대를 채워갔다. OST앨범이 프랑스에서 150만 장 이상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을 만큼 음악 자체는 유려하며 중독성도 있었으나 작품을 감싸안지 못하는 파편적 수준이었다. 충신 보포르 공작이 음모에 빠진 위기의 순간에 감미로운 기타 선율이 흐르며 긴장을 확 풀어버리거나, 엔딩에 뜬금없이 ‘삶은 아름답다는 걸 기억하자’는 가사의 대합창을 부르는 식이다.

미덕도 없지 않았다. 이런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에 대한 우리의 기대와 실체의 간극이 의미하는 것은 뭘까 새삼 돌아보게 했다. 굳이 ‘아시아 최초로’ 들여오면서까지 우리가 보고 싶었던 것은 웅장하고 화려하기만 할 것 같은 유럽 궁정 역사의 판타지 아니었을까. ‘태양왕’의 실체는 그런 기대를 철저히 배반했다. 막상 자국인의 눈에 비친 자신들의 조상은 그리 찬란한 존재가 아니라 다소 민망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 유럽 역사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문화 사대주의에 어퍼컷을 날린 작품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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