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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세월호 트라우마를 견디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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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재승
KAIST 교수
바이오 및 뇌공학과

지난 열흘 동안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글을 쓰지 못했다. 무슨 말을 적으려 해도 손가락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진심 어린 애도와 추모의 글이 내게도 작은 위로가 되었지만, 죄책감이 들어 차마 글을 쓸 수는 없었다.

 오늘 칼럼도 세월호에 대해 얘기하지 않으려 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해 연일 언론이 쏟아내는 부질없는 기사들에 하나를 더 보태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온통 머릿속에 세월호 생각뿐이니, 달리 할 얘기가 마땅히 떠오르지도 않는다.

 세월호에 대한 내 심리적 징후를 고백하는 걸로 시작할 도리밖에 없다. 지난주 수요일 늦게 진도에서 일어난 사건 소식을 접한 후, 밤늦게까지 뉴스를 봤다. 아비규환의 상황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다음 날 새벽, 물이 차오르는 작은 선실에 갇혀 최후를 맞는 악몽을 꾸었다. 식은땀에 온몸이 젖은 채로 새벽에 깼다. 그리고 펑펑 울었다. 희생자들이 겪었을 고통을 꿈속에서 겪은 후 그 공포에 치를 떨었다.

 나는 대학 때 물에 빠진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물속에 있었지만, 다리에 쥐가 나 허우적거리는 나를 본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주마등처럼 인생이 통째로 스쳐가는 순간, 누군가 나를 발견해 구해주었다. 너무 큰 고통도 죽음의 공포 앞에선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물속에서 엄습해오는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지난 열흘 동안 제정신으로 뉴스를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열흘이 넘어가는데도, 사람들은 그들이 살아있으리란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언론 역시 희망고문을 계속 한다. 아무리 에어포켓이 있다고 해도, 숨이 차오르는 차가운 물속에서 그들이 살아있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건, 바닷물의 공포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이다. 구조대원들은 1분 1초라도 아끼기 위해 최선을 다해주어야 하는데, 그 1초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사람은 뉴스를 보면서 피가 거꾸로 솟는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남 탓을 한다. 희생양을 만들어 온갖 비난을 쏟아내야 죄책감이 그나마 덜어지는 걸까? ‘이번 재난도 역시나 인재(人災)였다!’ 같은 문장은 재난사고 뉴스 헤드라인으로 어딘가에 저장돼 있나 보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보게 되는 것 같다. 슬프게도, 아비규환의 합동분향소 풍경은 오래된 정경처럼 눈에 익다.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도로에서 라디오 뉴스를 듣다가 시신의 손가락이 대부분 골절돼 있었다는 뉴스를 듣고, 가까운 휴게소에 차를 세워 목놓아 울었다. 나는 학창 시절 제주 수학여행을 배를 타고 갔었다. 넘실거리는 배에서 세 번이나 토하면서 식당 층에 피난민처럼 누워 울렁증을 경험해본 사람은 뒤집어진 배에서 안간힘을 쓰며 매달려 있는 느낌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지난 열흘 동안, 대한민국 사람들의 상당수는 외상후 스트레스를 경험했을 것이다. 세월호에서 구조된 생존자들이 겪은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비할 바야 아니겠지만, 온 국민이 극도의 우울감과 무기력감, 그리고 죄책감을 앓았으리라.

 대구 지하철 참사를 경험한 사람들이 그 후 오랫동안 지하철을 타지 못했던 것처럼, 중고등학교들은 이번 학기 수학여행을 대부분 취소했다. 앵커가 뉴스를 진행하다 목이 메어 울먹이는 광경도 여러 차례 보았다.

 아내는 밥을 먹다가 눈물을 왈칵 쏟는다. 철없이 싸우는 우리 애들을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고인다. 웃고 떠들다가도 갑자기 그렇게 웃는 자신이 한없이 혐오스러워진다. 지금 대한민국은 시민 모두가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이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치료하는 방법은 인지재활 치료가 그나마 가장 효과적이다. 참사 현장에 가보고 비슷한 경험을 수차례 해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면 서서히 고쳐진다.

 우리가 겪고 있는 세월호 트라우마도 한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필요하리라. 재난과 사고에 대한 국가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안전불감증이 이제 서서히 치유됐다고 느껴지면, 안심하며 다시 세상을 살아낼 용기가 생길 것이다. 늘 그렇듯 트라우마는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 견딜 수 있을 만큼 무뎌지는 것이다. 언제 그런 날이 올까?

 어쩌면 그런 날이 오길 기다리는 것보다 망각에 의지해 트라우마를 잊는 편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 몇 개월 전, 경주 마우나리조트 체육관이 붕괴해 부산외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10명이나 죽은 사고를 우린 이미 잊은 듯 보인다. 6월 브라질 월드컵과 9월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시민들이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흥겹게 축제처럼 대회를 즐긴다면 아마 소름이 끼칠지도 모르겠다. 인간에 대한 속절없는 원망으로.

정재승 KAIST 교수·바이오 및 뇌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