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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소수 인종 배려' 50년 만에 사라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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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케네디

대학교 입학 전형에서 소수 인종을 우대하는 정책을 미국 대법원이 주정부의 재량으로 폐지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에 미국 내 흑인과 히스패닉 사회가 반발하는 등 파장이 일고 있다.

 미 대법원은 22일(현지시간) 2006년 미시간주가 주민투표를 거쳐 공립대학의 ‘어퍼머티브 액션(적극적 우대조치)’을 금지하는 법을 마련한 데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전체 대법관 9명 중 보수성향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앤서니 케네디, 새뮤얼 얼리토, 클래런스 토머스,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 그리고 진보성향의 스티븐 브레이어 대법관 등 6명이 찬성했다. 반면 진보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등 2명은 반대했으며, 재판이 진행 중일 때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법무차관으로 소수계 우대정책을 지지한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은 이해당사자인 이유로 재판부 기피 신청을 내 결정에 불참했다.

 어퍼머티브 액션은 흑인 인권운동의 결과물로 1960년대 초반 미국 사회에 등장했다.

 찬성 의견을 낸 케네디 대법관은 “이번 사건은 인종 우대 정책에 대한 찬반을 결정한 게 아니라 누가 그 결정을 내리느냐에 관한 판결이었다”며 “주정부가 주민투표를 거쳐 한 결정은 인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각 주정부가 유권자들의 투표를 거쳐 결정한 정책에 대해선 연방정부나 대법원이 마음대로 뒤집을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프린스턴대 입학 당시 어퍼머티브 액션의 혜택을 본 히스패닉계 대법관 소토마요르는 58쪽짜리 소수의견서에서 “비록 주정부의 법 개정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이뤄졌어도 소수 집단을 억압하기 위한 건 안 된다”고 반대했다.

 흑인 등 소수계 우대정책을 지지해온 오바마 행정부도 대법원 결정에 유감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대학 합격생)할당제에 반대하지만 인종 등의 요소를 고려하는 건 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1년 12월 전국의 대학 입학처에 공문을 보내 “인종, 사회경제적 배경, 소외된 지역 등을 감안한 소수계 학생들의 대학 입학 허가를 장려해달라”고 당부한 일도 있다.

 문제는 대법원의 이번 결정이 앞으로 미국 사회에 불러올 파장이다. 미시간주와 마찬가지로 캘리포니아·플로리다·워싱턴·애리조나·네브래스카·뉴햄프셔·오클라호마 등 7개 주가 이미 주 헌법 개정이나 행정명령으로 어퍼머티브 액션을 폐지했으며, 다른 주도 뒤따를 조짐이다. 이런 움직임이 확산될 경우 미국의 대학 입학 전형 때 소수계를 우대하는 정책은 점차 사라질 전망이다. 싱크탱크인 센추리 파운데이션의 리처드 칼렌버그 선임연구원은 “대학들이 다양한 인종보다 돈 많은 학생들을 끌어모으는 데 점점 더 관심을 갖는 만큼 어퍼머티브 액션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한인사회 등 아시아계에선 성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 만큼 오히려 대법원 결정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프린스턴대 교수가 1980년대 합격생들을 대상으로 SAT(대학수능시험)를 분석한 결과 아시아계 학생은 흑인 합격자보다 280점이 높아야 합격할 수 있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적극적 우대조치)=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1년 ‘고용평등위원회’를 설립하면서 도입된 정책. 소수 인종이나 경제적 약자에게 특혜를 주는 사회정책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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