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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 바닥의 피해자 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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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2014년 4월 진도(左), 2011년 5월 후쿠시마(右).
채인택
논설위원

신문에 ‘세월호 사고 우울증 체크리스트’가 나왔기에 살펴봤다. ‘매일 우울하고 눈물이 난다’ ‘정신적으로 초조하고 불안하다’ 등등 해당하지 않는 게 하나도 없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면 대부분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지금 이런 증상이 가장 심한 분이 바로 피해자 가족일 것이다. 그런데 그분들은 과연 정부로부터 합당한 배려와 보살핌을 받고 있는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정부 대응에서 어느 하나 시원한 게 없지만 그중에서도 피해자 가족 대응은 그야말로 실망스럽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한눈에 띄는 것이 숙소로 배정된 진도체육관이다. 실종자 걱정에 불평할 여유가 없어 그렇지, 사방이 훤히 뚫린 체육관 바닥에서 다른 가족이나 취재진에게 24시간 사생활이 고스란히 노출된 채 지내는 건 그야말로 고역일 것이다. 이건 도대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하다못해 골판지나 커튼이라도 구해 칸막이를 쳐줘야 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피난민도 체육관 등에서 생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당국은 일장기와 ‘힘낸다, 일본’이라는 글귀가 인쇄된 포장박스로 가족별 칸막이 공간을 만들어줬다. 그해 5월 21일 후쿠시마를 방문했던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바로 그런 공간에 앉아 주민을 위로하는 장면이 보도됐으니 한국 공무원들도 이를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피해자 가족들은 1주일이 되도록 그런 곳에 계속 머물고 있다. ‘국민에 대한 배려 부족’이라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게다가 구조상황 등 정보가 궁금한 그분들 모두가 지켜볼 수 있는 대형 텔레비전은 현장을 찾았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요청한 다음에야 설치됐다. 왜 이런 걸 설치하는 데 대통령의 명령이 필요한 것일까. 이토록 국민에게 무신경한 행정이라니.

 더욱 무신경한 건 그곳에서 수중촬영 영상을 보여줄 때였다. 가족들은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하고 침묵 속에서 화면을 지켜봐야 했다. 그분들은 궁금했을 것이다. 왜 그때야 잠수와 촬영이 가능했는지, 그날 실제 잠수했던 사람은 몇 명이고 왜 그 정도인지, 조수간만은 무엇인지, 물속 조류 속도는 어떻게 변하는지, 바닷속 상황은 어떤지, 보이는 장면은 무엇을 하는 것인지 등등. 하지만 그 자리에서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가족들 사이에선 ‘저렇게 장시간 잠수할 수 있는데도 지금까지 왜 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고개를 든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물론 정부는 ‘오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오해는 바로 국민에게 무신경한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사실 잠수는 목숨을 내놓고 하는 위험한 작업이다. 천안함 폭침 당시 우리 해군 잠수 인력은 매일 한 차례씩 잠수했다. 하루 15분 잠수하고 이틀을 쉬는 미군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틀에 네 차례 물속에 들어갔던 베테랑 한주호 준위는 끝내 순직했다. 당국이 가족 앞에 잠수사를 데려와 이런 내용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며 상황을 정확히 알리게 했어도 이런 오해가 생겼을까.

 시신 앞에서 통곡하는 가족들에게 한밤중에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오라는 요구까지 했다는 소식 앞에선 아연할 뿐이다. 왜 이런 엄청난 사고 앞에선 서류를 현장 공무원이 알아서 준비해주는 ‘찾아가는 행정’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까? 가족별로 전담 공무원을 배치해 보살펴주는 배려를 할 수는 없었나? 국민은 없고 명령권자만 있고, 사람은 없고 일만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일본의 안전 관련 사고 대응 시스템을 다룬 특파원 기사를 읽다가 무릎을 친 부분이 있다. 바로 ‘피해자 가족 지원’이라는 항목이 ‘일사불란한 지휘체계’ ‘언론대응’이란 부분과 나란히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다. 앞으로 한국의 모든 사고 대응에서 ‘국민배려’를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게 바로 ‘비정상화의 정상화’일 것이다.

채인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