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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곳곳서 반김일성 운동|자수간첩 김용규씨 폭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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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철저하게 폐쇄된 북한사회는 외형적으로는 사건과 범죄가 발생하지 않는「무풍지대」로 위장이 되곤 한다. 그러나 북괴가 아무리 안간힘을 다해 부정적 요소가 전혀 없는 긍정사회로 북괴를 도식한다고 해도 이러한 거짓장막을 한겹만 젖히고 보면 많은 사건과 사고·범죄, 특히 김일성에 항거하는 저항운동이 빈발하는「돌풍지대」임을 우리는 알게된다. 북한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부정적 요소 가운데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김일성의 아성에 대한 주민의 적극적인 항거운동-.이는 날이 갈수록 도를 더해 가는 김일성 우상화의 광란과 파탄상태에 이른 경제아래서 신음하는 북한주민의 당연한 분출구로서 풀이되기도 한다. 이에 최근 거문도에 간첩으로 침투했다가 자수한 김용규씨의 증언을 통해 작금에 북한사회에서 일어난 항거운동을 비롯한 일련의 사건들을 살펴봄으로써 북한사회 저변에 흐르는 주민들의 불만과 원성, 그리고 고통의 실상들을 파헤쳐 본다. 【편집자주】

<버스·열차 충돌 사고>
75년8윌 황해남도 서흥군의 산악지역 건널목에서 승객을 태운「버스」와 화물열차가 충돌하여 수많은 인명피해를 낸 참사가 발생했다. 사고원인은「버스」운전사가 질주해온 화물열차를 보지 못하고 건널목을 건너다 일어난 사고로서「버스」가 완파되었음은 물론 승객 32명중 30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2명은 중상을 입었다.
한국의「매스컴」이라면 당연히 사회면의 머리기사가 됨직한 사건이었으나 신문·방송에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북괴당국은 사고 후에 아무런 수습책도 세우지 않은 채 사망자들을 비밀리에 매장, 가족들에게 통보했을 뿐으로 보상은 일체 없었다.

<편직물 공장 화재>
73년 평양시에 위치한 종업원 약 1천명규모의 편직물 공장에서 원인 모를 불이 일어나 공장시설이 모두 불타 버린 화재사건이 발생했다.
역시 세상에 밝혀지진 않았지만 이른바「불순분자」의 방화로 인한 화재였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로 되어있었다.
말하자면 북괴치하에 불만을 품은 인사의 계획적인 방화였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각종「나일론」유를 생산하는「2급 기업소」이 이공장의 화재로 말미암아 이곳에 비축된 수입원료 및 제품이 모두 타 74년도까지 북한의 시중에「나일론」제품이 절품 되는 사태까지 빚었다.

<함흥 화학공장 폭파>
69년 화약류를 제조하여 북괴군부대 및 산업시설에 공급하는 함흥시17호 화약공장에서 폭파사건이 발생해 공장 안에 저장한 화약원료 및 완제품과 각종시설 등이 완전히 폭파되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이 폭파사건으로 인한 인명피해만도 사망자 1백 여명에 부상자가 다수.
사건원인은 공장기술자로 근무중인 이른바「불순분자」2명이 계획적으로 공장을 폭파키 위해 치밀한 공작계획 아래 점심시간을 알리는「사이렌」과 동시에 폭파했다는 것이다. 사건 후에 2명의 용의자가 수배대상이 되어 북괴「사회 안전부」수사관들까지 동원되어 수사를 전개, 그중 1명이 체포되어 총살당했다는 얘기가 구전되었다.
이 사건의 여파로 당시 북괴군부대 및 산업용화약공급이 일시 중단되었고 함흥이북지역으로 통한 각종열차가 2∼3일간 전면 운휴되는 사태까지 빚었다.

<반공의거 투쟁사건>
69년 강원도 문천군 가은광산에 근무하던 광산노동자 및 기술자 11명이 비밀반공조직을 결성하여 직접적인 항거운동을 벌인 적극적인 반공의거였다.
주로 월남자 가족과 6·25당시 치안대가담자 등으로 구성된 이 반공투사들은 전쟁이 일어날 경우 북괴의 후방을 교란하고 국군이 진격할 때 합류, 대북괴투쟁을 전개할 웅대한 목표를 세우고 전열을 가다듬던 중 이들이 사제 수류탄 40여개까지 제조,「가은광산」안에 은닉한 사실이 발각되어 대의를 이루지 못한 채 좌절되고 말았다.
이 의거로 반공투사 11명 가운데 일부 인원은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잔류조직원들은 사제수류탄을 휴대, 북괴추격대와 끝까지 대치하였으나 북괴 사회 안전원 및 광산보안대원 5∼6명을 사살한 채 전원 산화하는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월남자 가족 9인조>
67년 강원도 문천군 문천기계공장에 근무하던 반공투사 조성덕씨(당시 26세)를 핵심으로 9인조 비밀반공조직을 결성해 반공「게릴라」활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치밀한 작전을 세우던 중 거사단계에서 사전 발각되어 불발에 그친 항거운동이었다.
이 비밀 반공조직들은 주로 월남자 및 북괴에 의한 피해자가족들로서 6·25당시 아군의 원산 함포 사격 때 불발된 포탄을 비밀리에 공장 안에 운반하여 공장의 주물직장과 조기직장사이에 매설한 후 폭파할 계획을 세웠으며 사제권총도 은밀히 제작했고 공장 안「교도대」무기고의 자물통열쇠를 만들어 무기탈취를 시도하다가 사전에 발각, 조직원 9명 전원이 북괴「사회 안전부」에 의해 체포된 후 행방불명이 됐다.

<광산 무장폭동사건>
지난 70년 평남 양덕군 서흥광산에서 발생한 대규모 무장폭동사건이었다. 사건동기는 전북괴「민족보위상」김창봉의 숙청에 따라 김이 조직한「생산유격대」(일명「잠바」부대)를 해체하고 여기에 대부분을 노동자로 배치하게 되면서 북괴당국은 극심한 사상검토를 자행케 되자 숨막히는 정치적인 통제에 불만이 고조된 40명의 광산노동자가 뜻을 함께 하고 무장폭동을 일으켜 북괴당국의 처사에 항거한 것이다. 이 무장항거에 나선 40명의 생산유격대원들은 광산「보위대」의 무기고를 습격, 자동소총과 실탄을 탈취한 후 덕천군당위 및 광산간부들의 납치를 시도했으나 이를 알아챈 간부들은 미리 군「사회 안전부」로 전원 피신, 분노한 40명의 대원들은 그들이 피신한 덕천군「사회 안전부」를 포위, 치열한 총격전을 전개했으나 숫적인 열세로 체포 또는 사살됐다. 이 사건으로 인해 주동자는 총살, 나머지「생산유격대」대원들은 해산 혹은 지역별로 분산 배치하여 이들에 대한 감시가 더욱 강화되었다.

<지도위원 사살사건>
73년 평양군 순안구역 대양리「초대소」(간첩양성소)에서 성명 미상의 한 월북자를 대남 공작원으로 소환하여 교육중 이 공작원이 지도원과 논쟁 끝에 지도원 2명을 현장에서 사살하고 도피 중 체포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북괴당국은 북괴지역 모든「공작원초대소」에 배치한 무기를 회수 조치하고 훈련 때에만 제공케 되었으며 평양시내에 위치한 초대소를 대거 지방으로 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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