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레슬리·겔브」 (미국제 문제 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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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키신저」에게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희망이 없는 마지막 단계에 사태를 역전시키는 능력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럽」은 「키신저」가 자기네를 따돌리고 소련과 함께 세계를 공동 지배하려 꾀한다고 미국을 불신했고 일본은 그들의 긍지와 경제에 가해진 「쇼크」에서 회복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이들과의 관계가 훨씬 나아졌다. 그것은 「키신저」가 「존·코널리」 재무장관이 서방 동맹국들과 경제 전쟁을 벌이는 것을 방관하고 있다가 막판에 뛰어들어 보호주의적 추세를 뒤집어엎은 덕분이다. 5년 동안이나 개발도상국과의 경제 관계에 눈도 돌리지 않고 있다가 재무성안의 경제일변도파를 물리치고 남북 경제 협상에서 미국의 지도권을 찾아냈다.
오랫동안 남「아프리카」와 한통속이 되어 검은 「아프리카」의 중요성을 업신여기고 「앙골라」 비밀 군사 작전으로 흑인 국가들을 적대시하다가 최근에 와서는 남부 「아프리카」의 평화적 해결에 주도권을 잡았다. 이런 과업들을 열거하자면 헤아릴 수 없다. 「키신저」가 패배의 문턱에서 성공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책략과 「타이밍」과 극적 효과의 명수였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술수에 능했다.

<「라이벌」을 무기력하게>
그는 「라이벌」을 무력하게 만들거나 고립시키는데서 출발했다. 그는 「닉슨」에게 「로저즈」 국무장관이 「로디지아」 문제 협상에서 백악관의 정책을 따르지 않았다고 고자질하고 「멜빈·레어드」 국방장관을 중공 문제에 관한 정보에서 제외시켰고 「닉슨」의 정부 관료에 대한 불신을 이용했다. 그리고 나서는 의회와 언론과는 친밀한 관계를 맺어서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체하면서 이들을 오도했다.
그의 말을 듣는 청중들은 거기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어떤 결론이라도 끄집어 낼 수 있었다. 백악관 측은 그가 월맹 북폭의 진정한 지지자로 믿고 있는데 비해 그가 「닉슨」의 북폭 연설을 들으면서 고개를 젓거나 얼굴을 찌푸리거나 「닉슨」을 비꼬는 것을 본 기자들과 의원들은 「키신저」를 북폭에 반대하는 숨은 비둘기파로 여겼다. 그들은 「키신저」가 무엇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모자 속에서 토끼를 끄집어내는 마술사와 같으므로 그에게 도전하는 것을 꺼렸다.
아무튼 그의 인기는 언제나 높았고 74년 「미스·유니버스·콘테스트」에 참가한 미인들은 그를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뽑았다. 이 「슈퍼스타」적인 자질은 그의 외교에도 큰 힘이 됐다. 외국 지도자들은 「키신저」와 함께 무대에 서기를 즐거워했다.
그는 또 진지하게 보였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잘」왕은 「나치」 독일에서 피난 온 이 유대인의 양 볼에 「키스」하는 사진을 찍도록 했다.

<신임 이용, 기회를 포착>
「파이잘」왕이나 다른 지도자들은 그가 자기들과 감정을 같이하고 자기들의 문제에 공명해줄 사람으로 생각하고 그를 신임했다. 그는 이 신임을 이용하여 기회를 포착하고 대담하게 나갈 줄 알았다.
그는 4차 중동 전쟁 때까지 중동 문제를 방관하다가 왕복 외교를 시작했는데 이것은 모든 관련 국가에 외교적 압력을 가하는 진귀한 방식이었다.
협상가로서 그의 기록은 논쟁거리다. 상당수의 의원들은 「키신저」의 외교 성과라는 것은 돈과 무기를 주고 호의를 얻어내는게 고작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키신저」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에 석유 값을 올리지 않는 조건으로 최신 무기를 팔 용의를 보였지만 석유 값은 어차피 올랐다고 말한다.
보수 진영에서는 「키신저」가 협정을 체결하는데만 급급해서 1단계 SALT협정은 허점 투성이라고 비난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중동 평화 협정과 월남 협상이다.
「키신저」의 월남 문제 해결 방식은 역사가들의 준엄한 비평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월남에서의 거래로 월맹 측은 미군 철수, 월남 정부에 대한 군원 중단, 월남에서의 월맹군주둔 묵인을 얻어냈지만 미국은 포로를 돌려 받았을 뿐이다.
협상가로서 「키신저」는 그의 전임자들보다 뛰어났다. 다른 사람들도 중공·소련·중동에서 같은 결과를 얻어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실제로 그런 과업을 성취했고 미국의 힘과 영향력을 자기 혼자의 몸을 통해 행사하는 능력과 기술·「타이밍」·믿을 수 없는 끈질김을 보였다.

<실패는 의회 탓으로>
확실히 「키신저」 자신도 할말이 있다. (그의 대리인은 「키신저」 회고록을 수백만 「달러」로 계약할 출판사를 물색하고 있다. 그의 대리인들은 이제 「키신저」가 몸에 배어버린 「리무진」과 운전사를 제공하라는 부대 조건을 달고 있다).
「키신저」는 중공과 소련·중동에서 돌파구를 얻고 새로운 정책을 굳혀 나가려는 판에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 권한이 동요되어 대 설계를 구현할 수 없었고 의회가 안목이 짧은 결정을 내림으로써 자신의 계획이 임기응변의 테두리에 머물렀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자신과 「닉슨」의 탓이 크다는 점을 그는 잊고 있다. 「키신저」의 유산은 풍성하다.
그는 중동에서 미국의 지배력을 회복했고 남북 회담·해양법 회의·핵 확산 금지 등에 괄목할 성과를 거두어 다음 행정부에 새로운 문제에 대처할 유리한 입장을 남겨줬다.
국제 관계에서 도덕과 인권이라는 새로운 인기 품목에 대한 「키신저」의 유산 또한 논란거리다. 그는 도덕을 평화와 안정의 유지라는 실용적인 차원에서 고려했고 외국과의 관계에서 「그 국가가 그들 국민에게 어떤 정책을 쓰는가 보다는 미국에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를 척도로 삼았다.

<두뇌·행동 더 기억될 것>
아마 「키신저」의 가장 위대한 성과는 혼돈이 지배하는 시기에 분별력 있는 외교 정책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이 월남의 경험에 얽매여 있으면서 세계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 외교 정책을 앞세워 「닉슨」의 몰락과 「포드」의 과도 기간을 거치면서도 미국을 세계 내에서 굳건한 지위에 남아 있게 했다.
무엇보다도 독특한 것은 「키신저」 자신이다. 그는 그의 성과보다도 그의 두뇌 때문에, 국제 질서를 위한 협정보다도 그의 행동 때문에 더 기억될 것이다.
그가 일개 시민으로 되돌아가도 그는 미국 외교의 큰 힘으로 남을 것이며 그가 하는 말은 모두 「뉴스」가 될 것이다. 그의 후임자들은 그의 지지를 바라고 그의 비평을 겁내면서 자기들이 항상 그와 비교될 것을 알고 그의 행적을 되돌아 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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