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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말 좋은 시절은 오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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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좋은 시절 다 갔습니다. 좀 더 일찍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두 달 전 베이징 특파원으로 부임해 온 직후 만난 중국 관리가 농담 삼아 건넨 첫마디였다. 그러고선 마오타이니, 샥스핀이니 상다리 휘어지게 차린 산해진미 대신 간소한 식사로 환영연을 대신하는 ‘결례’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시진핑(習近平) 체제 출범 이후 공직사회에 불어닥친 반부패 캠페인과 사치·과소비 추방 운동이 예사롭지 않다고 그는 덧붙였다.

 아닌 게 아니라 중국은 목하 부패와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떵떵거리며 살던 간부 아무개가 서슬 퍼런 중앙기율위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은 아침 신문의 고정 메뉴가 된 지 오래다. 지난주엔 이런 일도 있었다. 모 국영기업 회장이 정부(情婦)와 함께 호텔방에서 찍은 사진을 입수한 여기자가 “중국 공민의 이름으로 고발한다”며 중국판 트위터에 퍼뜨리자, 차관급인 그 회장님은 곧바로 면직처분과 함께 기율위로 불려갔다.

 시진핑 주석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른다.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부패 관리를 속 시원하게 때려잡아 주는 한편으로, 서민풍의 만두 가게에 불쑥 나타나 식사를 즐기는 식의 이미지 관리가 받쳐주니 선거로 주석을 뽑아도 시진핑의 재선은 따놓은 당상이다.

 하지만 반부패 캠페인만으로 중국의 부패가 사라질 것이라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대신 반부패란 이름의 또 다른 권력투쟁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만만치 않다. 저우융캉(周永康) 전 상무위원을 제물로 장쩌민 전 주석의 세력을 억제하고 자신의 권력기반을 굳히려는 정치적 목적이 깔려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런 의심을 살 만도 한 것이, 줄줄이 엮여 들어가는 고위관리들은 저우융캉과 직간접으로 연결된 사람들이다. 중국판(版) ‘표적사정’론이 나올 법한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오늘내일 한다던 저우융캉의 사법처리가 아직 감감무소식인 것도 그런 의구심을 부추긴다. 항간에는 몇 가지 풍설이 나돈다. 장쩌민을 비롯한 원로들이 과도한 사정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거나, 정법·공안 분야를 주무르던 저우융캉이 ‘엑스 파일’을 터뜨리겠다며 버티고 있다는 식의 소문들이다.

 개혁에 대한 저항을 억제하기 위해선 표적 논란을 무릅쓰더라도 과감한 인적 청산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사회는 점점 투명해진다. 하지만 제도적 장치의 확립 없이, 인적 청산이나 정치적 캠페인만으로 부패가 청산되지 않는다는 건 고금의 사례가 증명하는 바다.

 중국 스스로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듯하다. 공직자 재산 공개가 본격 거론되기 시작한 게 한 예다. 최근 한 심포지엄에 갔더니 중국 학자들은 “권력을 새장 속에 가둬야 한다”며 방법을 찾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새장 속에 권력이 갇히는 날이야말로 정작 중국인들이 바라 마지 않는 ‘좋은 시절’일 것이다. 상다리 휘어지는 대접은 안 받아도 좋으니 그런 날이 오는 걸 꼭 보고 싶다.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