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시대의 혁신 전략] 사람을 믿지 말고 시스템을 믿어라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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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해군 7함대 소속 항공모함인 조지워싱턴함(9만7000t급). [중앙포토]

저성장은 이제 선진국뿐 아니라 신흥국도 피해갈 수 없는 글로벌 경영환경이 됐습니다. 성장 정체가 장기화할수록 감량 경영만으론 살아남기가 어렵습니다. 모든 것이 정체된 시대 어떻게 하면 성장 동력을 잃지 않을지 중앙SUNDAY가 글로벌 혁신 컨설팅회사인 IXL코리아 및 윌슨페루멀과 함께 고민해보겠습니다. ‘저성장 시대의 혁신 전략’ 시리즈를 이번 주부터 연재합니다.

전남 진도에서 벌어진 여객선 침몰 사고의 원인은 위험관리 부실로 인한 인재(人災)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경영난을 겪고 있었던 해운사의 무리한 운항이 사고의 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세계 15위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국가로서는 부끄러운 현실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한국은 산업재해 연간 사망자수에서도 평균 2400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란 불명예를 안고 있다. 저성장 시대 적은 비용으로 위험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묘안은 없을까. 세계 최대 원자로 운영조직인 미국 해군에게서 실마리를 찾아본다.

미국 해군은 현재 핵추진 항공모함 11척, 잠수함 71척을 운영하고 있다. 원자로 수 기준으로 단일 조직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그럼에도 미 해군은 1950년 이후 딱 한 번 소량의 오염수 유출 사고 외에 무사고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바다라는 불안정한 상황과 다수의 신병들까지 이끌고 달성한 성과라는 점을 감안할 때 놀라운 기록이다. 미 해군은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스리마일 섬의 원자로 사고 등 국가적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 관리 체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원유 채굴과 정유로 연간 40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캐나다 기업 선코는 듀퐁과 같은 화학 업체들의 안전관리체계를 도입해 전체적으로는 안전사고 빈도는 줄일 수 있었으나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대형 재해사고는 피할 수 없었다. 선코는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를 계기로 대형 재해사고의 막대한 경제적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자 미국 해군의 안전운영관리체계를 도입했다. 먼저 대형안전사고 발생의 전조현상을 정의하고, 이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설정했다. 그리고 다양한 직무의 직원들이 참여해 관리자부터 말단 운영요원까지 주요 행동 매뉴얼을 작성했고, 매뉴얼이 지켜지도록 현장 감독체계와 사후 평가제도를 정비했다. 새로운 안전관리체계 도입 후 6개월 만에 대형안전사고 전조 현상 발생이 75% 이상 감소했으며 공장 가동 중단도 크게 감소해 생산성도 오히려 높아졌다.

사고 안 나도 매뉴얼 위반 처벌
미 해군은 안전관리에 3대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 첫째 안전과 생산성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운영시스템 안에서 동시에 관리한다. 한국 기업에선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하는 운영관리부서와 안전관리부서를 분리해 따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하면 현장에선 생산성에 더 무게를 둘 수밖에 없게 되고 안전관리는 생산성을 갉아먹는 장애물로 취급되기 십상이다. 미 해군은 일상적인 운영과 안전을 하나의 관리체계로 통합해 문제 발생 소지를 초동 단계에서 차단하고 있다. 원자로 가동 중단 위험은 전조 현상을 철저히 모니터링해 사고 징후가 발견되면 사고가 발생한 것과 동일한 수준의 적극적 대응을 의무화하고 있다. 예컨대 항공사의 경우 절대로 발생하지 않아야 할 중대사고는 항공기 추락이다. 이 때문에 항공기의 정비 지연이나 부품의 적기 교체 여부 등을 가장 신경 쓴다.

둘째 사람에 의존하지 않고 건전한 의심과 상호 감시를 일상화한다. 흔히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안전 불감증’이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안전 불감증이 언급될 때마다 경영자의 부도덕성이나 직원들의 인식 부족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대책으로 더욱 강한 처벌과 정신 교육이 단골 손님처럼 등장한다. 더욱 강한 처벌과 교육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심지어는 문화와 국민성의 문제까지 언급되는 형편이다. 그러나 과연 안전관리에서 앞서 간다고 믿어지는 서구의 경영자나 직원들이 한국에 비해 더욱 도덕적이고 안전 의식이 투철할까? 미국 해군은 안전에 관해서는 건전한 의심(healthy skepticism)이 일상화되도록 운영체계를 설계했다. 즉 안전에 대한 교육과 계몽을 통해 사람이 바뀔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미 해군은 원자로 운영과정에서 부딪힐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 매뉴얼을 정해놓고, 매뉴얼대로 행동하는지 철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

설사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행동 매뉴얼을 위반한 경우에는 평가와 보상에서 불이익을 주고 있다. 미 해군은 행동 매뉴얼에 따라 행동하는지 동료들이 상호 감시하고 의무화하고 있으며, 규정 위반이 발생한 경우 위반한 당사자와 상호 감시 책임이 있는 동료도 이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고 있다. 또한 효과적으로 상호 감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동료의 업무에 대한 교육과 훈련까지 받도록 하고 있다. 미 해군이 건전한 구성원들의 가치관을 올바로 정립하기 위한 교육을 게을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습관화된 행동 방식과 패턴이 교육이나 사후 처벌로 바뀔 수 있다고 믿지 않는 것이다.

셋째 기술개발 담당이 절차와 규정을 동시에 관리하고, 안전시스템을 진화 발전시킨다. 생산기술과 방식이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는 안전운영 매뉴얼이 변화된 운영 환경에 맞추어 지속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또한 현장에서 축적된 안전운영 노하우를 지속적으로 운영 표준 매뉴얼로 반영해야 안전 관리의 수준이 향상될 수 있다. 미 해군의 항공모함과 잠수함에 적용된 기술은 지난 60여 년간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이 때문에 새로운 기술 환경에 맞춰 안전 시설과 운영 절차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돼야 했다. 또한 핵시설 운영 과정에서 획득한 경험과 노하우를 반영해 지속적으로 안전 시설과 절차를 개선할 필요도 있었다. 미국 해군은 신병이 배치되더라도 60여 년간의 숙성된 표준 절차를 숙지시켜 해군이 그간 축적한 모든 노하우가 적용되도록 해왔다. 이를 위해 우선 안전관리 전담 조직에 절차와 규정을 현장에 전파하는 역할뿐 아니라 현장의 운영 노하우를 취합해 절차와 규정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역할까지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고 및 개선 사례를 체계적으로 수집하는 프로세스를 정립하고, 수집된 사례는 해군의 표준 절차에 반영해 다시 전 부대로 전파되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안전은 리더가 직접 챙긴다
“조직 변화의 가장 중요한 핵심 성공요인은 리더십이다”는 말은 이제는 식상하게 들리기까지 하지만, 그만큼 리더십이야말로 조직이 변화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미 해군의 경우에도 미 해군 핵전단 하이먼 릭오버 초대 제독의 리더십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릭오버 제독은 핵추진 전함이 대양에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사고·무정지 원자로 운영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운영관리체계에 누구보다 앞장 섰던 인물이다. 릭오버 제독의 리더십에서 한국의 경영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점은 그가 안전관리체계의 구축 과정에 직접 참여해 일일이 챙겼다는 점이다. 리더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그가 어떤 일을 직접 챙기는가에서 드러나고, 조직원들은 리더의 행동을 보고 자신의 업무 우선순위를 정하게 마련이다.

안드레이 페르만 윌슨페루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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