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공관절」본 궤도에 4년간 200명이 새 삶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하지에서 가장 어러운 발목관절의 인공관절 대치술이 처음으로 성공됨으로써 우리나라에도 인공관절시대의 막이 올랐다. 72년 5월 김영롱박사가 인공고관절 수술에 첫 성공을 거둔 이래 76년10월 현재 이 수술로 불구를 벗어버리고 새 생활을 찾은 환자는 2백여명에 달하고 있다.
사람이 두발로 서서 걸을 수 있는 것은 엉덩이와 허벅지를 잇는 고관절, 허벅지와 종아리를 연결하는 무릎관절. 그리고 발목관절 등 3관절의 기능 탓이다. 따라서 이곳 어느 부위에 잘못이 생기면 당강 보행이 어려워진다.
「류머티스」·결핵·외상 등이 이 3관절의 기능을 파괴하는 요인이다. 노인들의 경우 심한 골성 관절염으로 폭음(특히 소주)하는 사람의 경우 무균성괴사로 고관절의 기능이 마비되기도 한다.
62년 인공관절이 처음으로 등장할 때까지만 해도 기능 마비된 이들 관절을 재생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영국의「존·찬리」박사가 신비스럽기만한 인공 고관절을 개발, 보급하면서 정형욋과도 이른바 혁명기에 접어든 것이다.
물론 몃년전까지 인공관절에 대한 시비는 대단했다. 어떻든 앉지도 못하는 불구보다는 시비가 붙은 인공관절일지라도 수슬을 받아 자유스럽게 활동하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정도로 받아 들여졌다.
그러나 75년「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13차 국제 정형욋과학회 학술대회에서는 정식으로 인공관절시대의 개혁을 선언, 현재 전세계적으로 2백만명이 인공관절로 새삶을 찾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격적인 인공관절시대의 주역은 국제저마찰학회. 인공 관절 개발자인 「존·찬리」박사를 중심으로 보급에 공로가 큰 세계적인 정형욋과의사 76명의 정회원과 3백여명의 준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동양에서는 김형롱박사가 유일하게 지난 9월21일 정회원으로 가입했다.일본은 아직 준회원국이다.
70년 영국에 건너가 「존·찬리」박사에게 직접 인공관절에 대한 지도를 받은 김박사는 특히 결핵성 관절염의 전 고관절 대치술로 국제학회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데 1백41 예의 전 고관절 대치술과 8예의 무릎관절의 인공관절 대치술, 그리고 이번 처음으로 발목의 인공관절 대치술을 성공시켰다.
인공관절은 「플라스틱」과 합금의 복합체. 따라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해서 사람의 관절과 다름없이 마찰을 최소한으로 줄이느냐 하는 점이다.
어느 관절보다도 온몸의 무게가 쏠리는 발목관절의 인공관절 대치술이 어려운 이유도 바로 이 마찰의 극소화에 있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하고 역학의 이론이 체계화 된 오늘의 지식으로도 체중을 떠받들고 갖가지 운동이 가능한 하지관절의 신비를 완벽하게 해곁해 줄 수 있는 인공관절을 제작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재 인공관절 대치술을 받으면 거의 정상인에 가깝게 보행이 가능할 수준에는 도달해 있다.
이번 김박사의 개가로 적어드 이분야에서 만큼은 우리 의학 수준이 국제적임을 과시한 셈이다. <김영치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