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세대」는 논리어 구사에 어둡다|한국어문 교육연구회서 박용주 교수 발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거의 한자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현재의 대학생들은 한글로 표현된 한자의 뜻을 이해치 못해 철학이나 종교 등 논리성 있는 책을 외면하고 있다.
영문학자 박용주 교수(경희대)는 5일 하오 한국어문 교육연구회(회장 이희승) 주최로 덕성여대에서 열렸던 어문강연회에서『대학교육에 있어서 한글세대의 문젯점』이라는 강연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밝히고 국어 중 논리어와 정서어를 혼동하는 최근 대학생의 언어생활 실태를 우려했다.
박 교수는 정서어가 감성에 바탕을 둔 예술에 필요한 언어인 반면 논리어는 이성에 기초한 철학·종료·과학 등 고도의 논리적 추리에 필수적인 언어라고 규정했다. 국가·폐·삼각형이 논리어라면 나라·허파·세모꼴 등은 정서어라는 주장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전통철학과 종교가 박약했던 상황에서는 논리어가 한자를 통해 발달했고 대부분의 토박이 우리말은 정서어로 구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사정은 영어에서도 비슷해 정서어가 대부분이었던「앵글로색슨」어는 논리어가 대부분인「라틴」어의 5분의1밖에 안 된다고 소개했다. 따라서 박 교수는 우리의 학술문화가 발달하기 위해서는「라틴」어와 같이 논리어인 한자의 발달이 불가피 하다고 주장했다. 요즘과 같이 정서어만 중점적으로 교육받은 대학생들은 막자를 한글로 표기한 논리어가 생소해 감정적인 문학 서적은 잘 읽지만 학술서적은 기피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경향 때문에 우리나라 대학생의 경우, 대학생의 상당수가 논리적 학구태도와 방법에 대한 능력이 점점 약해져 가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예로 박 교수는 대학생의「리포트」와 논문 작성에서 한자시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회피, 논리어로 표현돼야 할 사고대상을 정서어로 표현하고 정서어로 논리적인 것을 설명하는 학생들의 증가를 지적했다.
시험 문제의 답안작성에서도 논리어와 정서어의 잘못 사용이 심할 뿐만 아니라 한자를 사용한 학생도 틀린 글자를 쓰는 경우가 많아 대학생의 상식 수준을 의심할 정도라고 말했다.
특히 이들 학생은「리포트」에서 얼·넋·보람·멋·사랑·나라·슬기 등의 정서어가 자주 등장, 명확한 개념규정을 저해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글자란 사고결과의 전달 수단일 뿐만 아니라 문화의 창조 수단이기 때문에 문학창조의 중심이 될 대학생들이 논리어에 약한 현실은 문화발전의 퇴행현상을 자초하는 결과라고 말했다.
이밖에 일부 지식인이 한자· 영어 등 논리어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학생들에게는 정서어만 배울 것을 강요하는 현재의 교육제도는 논리적 사고방식을 억제한다는 점에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대학생들의 이 같은 논리어에 대한 무지를 극복시키기 위해 한자교육 강화에 의한 논리·정서어의 균형 있는 발전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특히 균형 있는 국어의 발전을 위해서는 간단한 일상용어나 정서적 표기는 한글로, 학술적 비문용어는 한자를 병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말이나 글의 단순화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기 때문에 한자를 사용한 조어도 간결하게 해야 되고 논리어를 높은 차원에까지 발전시키고 익혀 문화민족으로서의 언어를 유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