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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없는 내륙국 몽골, 북한의 선박 피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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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 4일 전남 여수시 거문도 남동쪽 34해리(63㎞) 공해상. 북한 선원 16명이 탄 몽골 국적의 4300t급 화물선 ‘그랜드 포춘 1호’가 침몰했다. <중앙일보 4월 5일자 6면>

 우리 해경은 구조작업을 벌여 5명을 구조했으나 2명은 사망했고, 추가수색을 벌여 시신 1구를 추가 인양했다. 구조된 3명과 시신 3구는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보냈다. 해경과 여수경찰서 등에 따르면 침몰한 배는 북한 청진항에서 출발해 중국 양저우(揚州)시 인근의 장두(江都)항으로 항해 중이었다. 중유 50t과 철광석 등이 실려 있었다. 우리 정부는 14일 마지막 시신 1구를 북한에 인계했다.

 그랜드 포춘 1호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 몽골 국적의 배였다. 선주는 홍콩에 있는 회사였다. 해양수산부 등은 선주가 ‘편의치적(便宜置籍)’의 일환으로 몽골에 배를 등록하고 임금이 싼 북한선원을 고용해 화물사업을 벌인 것으로 추측했다.

 편의치적은 자국선원 의무고용비율을 피하고, 세금절약을 위해 다른 나라에 배를 등록하는 것을 말한다.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파나마나 라이베리아 국적의 배가 많은 것은 편의치적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몽골은 내륙국이지만 2003년부터 선박등록국(局)을 개설하고 타국의 배를 등록받고 있다. 선박 등록을 받아 세금을 걷고 해운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다. 위키리크스가 2007년 공개한 미국 대사관 전문에 따르면 몽골에는 283척이 등록돼 있다. 배 주인의 국적은 싱가포르(91척), 파나마(22척), 말레이시아(22척), 홍콩(12척) 등이었다. 선주가 국적불명인 배도 39척이었다.

 북한이 홍콩 회사를 대리선주로 내세워 몽골에 배를 등록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번 그랜드 포춘호는 한국 영해가 아닌 공해상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대북 제재 결의에 따른 선박수색이나 조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며 “바로 눈에 띄었던 중유나 철광석 외에 어떤 물건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나온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 보고서에 따르면 국적은 북한이 아니지만 실제는 북한 배로 의심스러운 게 최소 8척 이상이었다. 이중 승리2호, 군자리호, 광명호 3척은 이번에 발견된 그랜드 포춘1호처럼 몽골에 등록돼 있다. 다른 나라 국적을 갖고 있고, 선주는 홍콩 사람인 배도 1척이 있었다.

 유엔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은 보고서를 통해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094호(2013년)가 발효된 후 북한은 선박을 다시 등록하거나 국적을 변경해 제재를 피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해에만 4척의 배를 캄보디아·토고 등으로 국적을 변경했다.

 이런 전례도 있다. 2011년 5월 북한 남포항에서 미사일 무기 등으로 추정되는 부품을 싣고 미얀마로 향하던 ‘라이트’호는 미국 해군의 추격을 받자 공해상에서 체류하다 회항했다. 라이트호는 2006년까지 ‘부연1호’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북한 국적의 선박이었지만 북한 핵실험 후 대북제재가 심해지자 이름을 ‘라이트’로 바꾸고 국적도 중미의 벨리즈로 변경해 운행했다. ‘라이트’호는 미국의 단속이 있은 지 2개월 후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으로 국적을 바꾸고 배 이름도 ‘빅토리 3호’로 변경했다. 유엔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은 국적을 ‘세탁’한 북한 배가 19척 이상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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