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 우크라이나, 적이면서 주요 시장인 러시아 어찌할고?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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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우크라이나 사태가 내전 위기로 치닫고 있다. 러시아는 개입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서 “급격한 갈등 확산이 우크라이나를 내전 직전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말했다. 여의치 않으면 언제든지 러시아계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사 개입할 태세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치 벨레(DW)는 15일 “러시아가 도네츠크를 비롯한 동부 우크라이나에서 노리는 건 경제적 이득이 아니다”고 보도했다.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면 재정 지원 없이 자체 생존이 불가능한 동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 영토의 5%에 불과한 도네츠크와 그 주변은 ‘우크라이나의 심장’으로 불리는 산업도시다. 인구의 10%가 살고 있고 주민의 25% 가량이 러시아계다. 도네츠크 외곽에는 유럽에서 네 번째로 큰 탄전(炭田)이 있다. 100억t이 넘는 석탄이 지표 부근에 매장돼 있다. 우크라이나 GDP의 20%, 수출물량의 25% 가량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탄전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비용은 증가하면서 지역경제는 침체의 길을 걷고 있다. 베를린 베르트홀트바이츠센터 우크라이나 전문가 에발트 뵐케 이사는 “도네츠크 탄전은 폐쇄 시 우려되는 실업 등 각종 사회문제 때문에 재정 지원을 통해 근근이 버티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틴이 야욕을 보이는 건 ‘신 러시아제국’ 건설에 빠져서는 안 될 상징성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도네츠크 등 동부는 수세기 동안 농업지역이던 곳을 스탈린이 산업도시로 만든 구 소련 중공업 중심지다.

게다가 동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방위산업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도네츠크에서 생산되는 특수강철은 러시아 탱크 제작에 쓰인다. 도네츠크 서쪽에 위치한 자포리치아에서 만든 엔진은 러시아 전투헬기 대부분에 장착된다. 러시아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부품 제작과 유지·보수는 율리야 티모셴코(53) 우크라이나 전 총리의 고향인 드니프로페트로프스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지난달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을 중단했다. 러시아 방위산업을 책임지는 드미트리 로고진 부총리는 “외국 기술과 부품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동부 우크라이나로부터 부품 공급 등이 끊기면서 러시아 방위 부품 조달에 차질을 빚고 있다.

문제는 동부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는 점이다. 도네츠크와 주변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과 시스템, 장비는 대부분 러시아에 수출되며 우크라이나의 주요 수입원이다. 러시아 수출용으로만 제작돼 다른 나라엔 당장 수출하기도 힘들다. 키예프의 모힐라아카데미의 정치분석가 안드레아스 움랜드는 “만일 러시아 시장이 닫힌다면 동부 우크라이나는 수출길이 막히게 돼 우크라이나 전체가 더욱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크라이나로선 도네츠크 등 동부지역을 러시아에 뺏기지 않은 채, 주요 시장인 러시아와의 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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