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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달려라, 요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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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경기도 화성 전곡항에 있는 마리나에 요트들이 정박해 있다. 전국 30곳의 마리나 중 200척 이상 요트를 댈 수 있는 마리나는 전곡항과 부산 수영만 두 곳뿐이다. [중앙포토]

2012년 경남 통영에서 열린 ‘이순신배 국제요트대회’ 우승자인 변호사 안진영(40)씨. 그는 소속 동호회가 갖고 있는 요트를 빌려 탄다. 그러다가 각종 대회 우승으로 자신감이 쌓이면서 자신만의 배를 갖고 싶어졌다. 그래서 최근 일본에서 중고 요트를 사오기 위해 관련 절차를 알아봤지만, 결국 구입을 포기했다. 요트를 갖게 되더라도 배를 댈 곳이 마땅치 않아서다. 요트는 주차장 격인 마리나가 부족해 정박 비용이 한 달에 30만원 정도에 이른다. 안씨는 동호회에 연회비 90만원을 내고 요트를 빌려 타고 있는데, 자기 배를 갖게 되면 부담해야 할 돈이 지금보다 4배(연 360만원) 늘어나는 것이다. 안씨는 “마리나가 부족해 요트 구입을 망설이거나 포기한 사람들은 나뿐만이 아니다”며 “정부가 마리나 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얘기는 많이 하고 있는데, 실제 요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겐 제약이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안씨와 같은 ‘수상레저기구 조종면허 보유자’는 전국 12만6000명(2012년 기준)이다. 2006년(5만6000명)에 비해 두 배 넘게 늘었다. 요트·보트와 같은 레저선박 수도 205척(2006년)에서 8560척(2012년)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전국의 모든 레저선박 계류지에 요트를 댄다고 해도 18%(1542척)만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나머지 배들은 평소 트레일러 같은 곳에 올려져 있다는 얘기다. 안씨는 “전문 요트 선수들이나 대회 직전 배의 물기를 말리기 위해 요트를 땅 위로 끌어올린다”며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배 댈 곳이 없어서 평소 뭍에 요트를 보관하면 탈 때마다 드는 운반·하역비 부담이 천정부지로 올라간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이와 같은 문제 해결에 나서기로 했다. 마리나 규모를 늘려 요트를 댈 수 있는 공간을 2019년까지 현재의 4배인 6000척으로 늘리기로 한 것이다. 요트 시장을 키워 서비스업 활성화와 해양레저스포츠 저변을 넓히고, 레저선박 제조기술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게 정부의 목표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요트 산업은 이제 ‘부자들만의 것’이란 인식을 바꾸고 관련 지원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해수부는 이 같은 내용의 ‘마리나 산업 육성대책’을 15일 발표하고 국무회의에서 논의했다.

 해수부는 우선 2017년까지 전국 6곳에 각각 300척 이상 레저선박을 댈 수 있는 ‘거점형 마리나’를 조성하기로 했다. 안씨의 지적대로 ‘요트용 주차장’ 공급을 늘려야 요트 제작·매매도 활성화될 거란 이유에서다. 후보지는 덕적도(인천 옹진)·고군산(전북 군산)과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 일대, 명동(경남 창원)·후포(경북 울진)·진하(울산 울주)다. 해수부는 현재 이들 6곳에 대한 기본설계를 실시하고 있다. 한 곳당 최대 300억원씩 예산을 투입해 방파제와 같은 기본 시설을 만들면서 이 지역 마리나 사업을 수행할 민간자본을 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요트에 대한 세금 감면도 추진하기로 했다. 요트는 집·땅·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살 때 취득세를 내야 하고 재산세도 낸다. 이 세금 부담을 줄여줘야 요트 구입자가 늘 거라는 판단에서다. 현재 정부는 레저선박에 세금을 매길 때 1억원이 넘는 배에 대해선 ‘고급선박’으로 분류해 세율을 높게 정하고 있다. 1억원이 안 되는 배를 살 땐 취득세 2%, 재산세는 0.3%를 적용 받는데, 1억원을 넘으면 취득세율이 10%로 올라가도록 과세 제도를 만들어놨다. 재산세율도 5%로 증가한다. 이렇게 세금을 강하게 매기는 고급선박의 기준을 1억원보다 더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게 해수부의 판단이다. 구체적인 기준 상향 방안은 해수부 내부 논의와 소관 부처인 안전행정부와 협의를 거친 뒤 결정될 예정이다.

 고급선박의 기준이 바뀌면 실제 요트 구입자의 세금 부담은 얼마나 줄어들까. 최근 해수부가 ‘올해의 레저선박’으로 선정한 ‘ALT11’을 예로 들어보자. 레저선박은 정부가 정한 ‘t당 가격 기준’에 따라 기준시가가 매겨지는데 이에 따르면 ALT11의 가격은 1억5560만원이 된다. 1억원이 넘기 때문에 고급선박이 된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취득세(1559만원)와 재산세(778만원) 부담은 모두 2337만원이다. 그런데 정부가 이 고급선박 가격 기준을 만약 2억원으로 올린다면 ALT11 구입자는 중과 대상에서 제외돼 이 두 가지 세금 부담의 합이 361만원으로 줄어든다. 문해남 해수부 해양정책실장은 “레저선박에 대한 중과세 기준을 조정할 때가 됐다”며 “부과 기준을 개편해 실질적인 세금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세금 감면으로 요트 수요가 늘면 이에 따라 국내 레저선박의 제조를 위한 기술 연구개발도 활발해질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2012년 한국에서 만든 레저선박은 88척이다. 반면 미국(49만7250척)의 레저선박 생산량은 한국보다 5600배 많다. 해수부 관계자는 “일단 국내에서 요트를 사겠다는 사람이 많아야 우리나라 기업도 제작에 뛰어들 것”이라며 “우선 세금 경감 같은 국내 수요 창출에 물꼬를 터주면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제작·판매에 나서는 국내 기업이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요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정부의 이 같은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한편으론 “요트에 대한 규제완화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무엇보다 요트를 이용할 때마다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게 동호인들의 가장 큰 불만이다. 안씨는 “구청은 안전을 이유로 요트 이용을 규제한다”며 “많은 사람이 함께 이용하면 사고 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육상스포츠나 도로도 마찬가지인데 수상스포츠에 대한 규제 수준이 과도하게 높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자체가 요트 이용 승인권을 쥐고 있어 각종 행사에 요트 동호인들이 동원되는 일도 벌어진다는 게 그들의 불만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요트 이용자는 “이를 거절하면 나중에 요트를 이용하지 못하게 할까 봐 이에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종=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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