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엔 방학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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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학들이 이미 방학에 들어간 요즈음에도 각 대학도서관은 그것을 잊고있다.
사회진출을 앞둔 고학년 혹은 고시공부 등에 여념이 없는 학생들이 밤10시가 넘도록 도서관에 앉아 「러닝·샤쓰」바람에 책을 읽는다.
예년에 볼 수 없던 이런 현상은 그동안의 가라앉은 면학 분위기와도 상당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학생들 스스로 내실을 기하려는 결단과 아직도 풀리지 않는 취직난이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 많은 학생들의 공통된 견해다.
지난 19일 방학에 들어 간 서울대의 경우 다른 대학에 비해 훌륭한 시설과 많은 좌석 수(3천8백여 석)를 갖춘 탓인지 도서관이 학생들로 꽉 들어찬 느낌은 없었으나 많은 학생들이 나와 제각기의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졸업논문 준비를 하러 매일 도서관에 나온다는 이충섭군(23·독문과4)은 『작년부터 논문심사가 엄격해져 방학이라고 놀러 다닐 수만은 없다』며 『확실히 작년에 비해 다른 친구들도 그런 학구적인 자세가 뚜렷해졌다』고 전한다.
학생 수에 비해 도서관의 좌석수가 모자라 도서관 건립기금을 모금하고있는 연대는 좌석을 차지하려는 학생들이 아침 8시부터 도서관으로 몰리고 있다. 하오 4시쯤 잠시 휴게실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머리를 식히고있던 박상섭군(26·수학과3)은 『복학을 하고 보니 학원 분위기가 예전과 많이 변했다』며 『지난 한 학기가 무척이나 길게 느껴져 뿌듯한 마음까지 든다』고 말한다.
또 예전보다 잦은 시험에 공부를 안할 수도 없겠지만 경쟁사회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스스로 책을 찾게 된다고 말한다.
남자대학에 비해 방학중 도서관을 찾는 학생수가 적은 편인 이대의 경우 『아마 취직의 초조함이 없어 그런 것 같다』고 말하는 이봉순 교수(도서관장)는 『그러나 예년보다는 꽤 도서관을 찾는 학생이 많은 것 같다』고 전한다.
방학중 학교도서관을 찾는 학생들은 대부분 도시락을 두개 싸오는 경우가 많다.
저녁 늦게 고대 중앙도서관 앞 잔디밭에서 동료학생들과 도시락을 먹고 있던 임종원군(27·통계학과4)도 새벽 6시쯤이면 일어나 도서관에 와서 밤 10시가 넘도록 공부를 한다고 말한다.
『끊일 새 없는 초조감속에서 계속되는 취직공부 중에도 가끔 교양도서를 접할 기회가 아쉽다』고 고충을 말하는 임군은 『어쨌든 공부하는 보람은 피서에의 유혹을 얼마든지 억누를 수 있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 도서관을 향한다.
밤 10시가 넘어 교문을 나서던 성대의 손원일군(24·통계학과4)도 『회계사 시험준비에 눈코 뜰 새가 없다』며 『밤늦게 교정을 걸어나오며 콧노래를 불러보는 기분은 피서지의 학생들은 모를 것』이라며 활기 띤 목소리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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