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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부실 복원에 이은 부실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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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강현
정강현 기자 중앙일보 이슈팀장
[일러스트=김회룡기자]
정강현
사회부문 기자

지난달 26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 기자실은 분주했다. 숭례문·광화문 부실 복원 의혹과 관련한 최종 수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두 문화재의 목공사를 맡았던 신응수 대목장에 대한 처벌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가 문화재청이 공급한 금강송 일부를 빼돌렸다는 사실을 시인했다는 걸 미리 취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수사팀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문화재청 공무원 6명이 시공사로부터 4200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문화재청 공무원과 특정 시공사가 결탁 관계에 있다는 소문이 사실로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지난해 온 국민을 분노하게 했던 숭례문 부실 복원의 이유도 이 같은 고질적인 부패의 고리 때문인지 모른다.

 그날 오후 문화재청은 긴급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속뜻이야 어찌됐든 표현만큼은 절절한 사과문이었다.

 “문화재 공사와 관련하여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환골탈태의 심정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환골탈태(換骨奪胎). 이 말 뜻 그대로였으면 좋았을 뻔했다. 뼈를 바꿔 끼울 정도로 전혀 다른 존재가 되겠다는 다짐이다. 그러나 이 표현은 그저 듣기 좋은 미사여구에 불과했던 것 같다. 그 다짐이 진실이었다면 문화재청이 9일 발표한 ‘문화재 수리체계 혁신 대책’과 같은 허술한 방안은 내놓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대책에서 환골탈태의 흔적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소속 공무원의 비위가 드러났는데도 그들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더구나 숭례문 부실 복원의 핵심 이유로 지적됐던 ‘문화재 공사의 공기(工期) 설정’과 관련한 항목도 빠져 있었다. 고질적인 문화재 업계의 부패구조, 문화재의 복원을 아파트 공사하듯 처리하는 후진적인 관행에 대한 개선안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숭례문 공사 현장을 3년 이상 관리했던 한 인사는 기자에게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공기를 지켜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털어놨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내에 마무리하기 위해 공사를 서둘렀다는 얘기다. 공기를 무리하게 맞추려다 보니 목재 뒤틀림 등 부실이 발생했다는 지적도 많다.

 이번에 문화재청이 발표한 혁신 대책에선 문화재 복원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수리 실명제 등 기술자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 항목만 넘쳐난다. 문화재는 단순한 건물이 아닌 역사다. 역사를 복원하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극진한 정성이다. 문화재청은 환골탈태를 말하기 전에 유구무언(有口無言)의 자세로 스스로를 혁신해야 한다.

정강현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