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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전은 관 주도에서 벗어나야|잇단 운영 방법 개혁 미술계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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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가을 국전 (25회)의 개최 날짜가 10월2일로 확정됐다. 국전은 지난봄에 최초의 공개 심사로 새로운 기록을 남기더니 이번 가을부터는 심사에서 투표·채점을 기명으로 하고 최고상의 결정에는 토론을 거친다는 등 또 다른 개혁을 덧붙였다. 구상과 비구상을 합쳤다 분리했다, 추천·초대 작가 상을 신설하고 서예를 한 부로 독립시키고 드디어는 심사를 공개하는 등 국전은 그 동안 갖가지 방법상의 변천을 많이도 겪어 왔다. 국전을 두고 끈질기게 나돈「발전적 해체론」이 점차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도 이제 지엽적인 개선이 아닌 국전에 대한 본질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때문이 아닐까. 미술계 인사들의 의견을 모아 바람직한 국전의 앞날을 점쳐본다.
지난봄에 공개된 국전 심사를 지켜보면서 미술계 인사들은 이 제도의 성과와 문제점을 반반으로 평가했다. 그 동안 꼬리를 물었던 「사전 합의설」,「분배식 시상」의 인상을 씻을 수 있는 것은 성과에 속한다.
문제점으로는 개성적인 작품이 빛을 못 보았다든가, 작품의 섬세한 「마티에르」가 무시되고 전시 효과적인 작품만이 선에 들었다는 점등이 지적되었다.
이런 문제에 대한 방법적인 개선은 이번 가을 국전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면 국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국전은 「대한민국 미술 진흥 정책」의 중추가 되어 있다. 그 국전이 우리 현대 미술의 방향 정립에 얼마만한 기여를 하고 있는지가 의문인 것이다.
『현대 미술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해지고 있다. 그 속도와 다양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관전이 무거운 권위를 지키고 있는 것은 현대 미술을 오히려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오래 전부터 국전 폐지론을 주장해 온 평론가 임영방씨 (서울대 교수)의 말이다.
관전은 본래 미술계 자체만으론 제대로의 활동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관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미술 활동을 지원하는 방법. 그래서 국전은 선진국에서보다는 후진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역사상 관이 주도하는 전시회에서 미술사에 기여할만한 큰 작가가 나온 적은 별로 없었다.』 서양화가 박서보씨 (홍대 교수)는 좀 더 강경한 의견이다. 많은 비용을 들여서 매년 2번씩 국전을 개최하기보다는 차라리 재능 있는 작가에 대해 중점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
관에서 예술을 지원하되 주도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조력자·후원자로서 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박서보씨의 의견은 임영방씨와 일치하고 있다. 미술 평론가 이경성씨 (홍대 박물관장)도 미술 진흥 정책이 국전이라는 외곬으로 흐를 것이 아니라 미술상이라든지 여러 개의 소규모 전시회로 다양하게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미술관이 발족한 바에는 지금의 국전을 현대미술관에 이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미술을 고루 발전시킬 수 있는 다각적인 예술 정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국전 운영위원의 한 사람인 이경성씨는 한편 국전의 존속을 전제로 이런 차선책을 제시한다. 『국전은 보수적이기 마련이고 모든 전위 미술을 고루 포함하기는 어렵다』는 것.
또 실험적인 전위 미술이 활발한 한편으로 전통의 확립도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런만큼 국전이 존속하는 한 튼튼한 전통을 구축해서 모든 실험 미술이 도전할 수 있는 아성이 되어 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이경성씨는 앞으로의 운영 위원회에서 봄·가을 국전을 재편성, 회화와 조각을 가을로 몰고 봄에는 그 이외의 것들을 전시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비쳤다.

<지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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