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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저가항공, 언제 이리 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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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아시아나항공이 저비용 항공사(LCC) 설립을 적극 검토하면서 국내 항공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한진그룹 계열인 진에어는 물론 기존 제주항공·이스타항공·티웨이항공 등과 정면 대결하면서 국내 LCC 시장이 ‘시즌2’를 맞이한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주 국토교통부를 찾아 설립 절차를 문의하는 등 움직임이 분주하다. 무엇보다 지난달 공식 취임한 김수천 사장이 주도하고 있어 추진력에 무게가 실린다. 그는 지난해 말까지 아시아나가 부산상공회의소와 합작 투자한 에어부산 대표를 지냈다. 아시아나는 에어부산을 부산 지역에 근거를 둔 지역항공사로, 신설하는 LCC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운영해 경영 효율성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아시아나항공의 LCC 사업 진출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항공 시장의 재편을 인정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그만큼 저비용 항공사들의 공세가 매섭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내선 시장에서 LCC는 강자다. 제주항공·진에어·에어부산·이스타항공·티웨이항공 등 국내 LCC 5곳의 지난해 국내선 여객 분담률은 48.2%에 이른다. 김해~제주 노선의 경우 10명 중 7명 이상(72.7%)이, 김포~제주 노선은 6명 가까이(59.3%)가 LCC를 이용하고 있다. 국제선 역시 점유율 10%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국토부 김홍목 항공산업과장은 “2005년 겨우 2만 명을 넘었던 이용객이 지난해 1569만 명으로 급증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아시아나는 LCC들의 공세를 방어하는 데 그쳤다. 대응이래야 출발 두세 달 전에 미리 예약하는 이용객에게 요금을 할인해 주는 ‘얼리버드’ 상품을 출시하는 수준이었다. 여기에다 엔저로 인한 일본 승객 급감, 화물운송 감소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결국 지난해 영업 적자가 112억원으로 2009년 이후 4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유가 상승, 업체 간 경쟁 격화, 탄소세 부담 등도 악재다. 활로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북미·유럽에서 ‘실패한 모델’로 평가받는 자회사형 LCC 설립이 아시아권에선 대세가 돼 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최초의 LCC는 미국 사우스웨스트항공이다. 1971년 항공기 3대로 첫 비행을 시작한 이 회사는 낮은 원가 구조와 ‘펀(fun) 경영’ 등을 무기 삼아 미국 국내선 1위로 급성장했다. 9·11 테러, 글로벌 위기 속에서도 30년 넘게 흑자를 이어오고 있다. 유럽에는 아일랜드계 라이언에어, 영국계 이지젯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대형사 계열 LCC는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는 평이다. 사우스웨스트의 성공에 자극받은 델타·유나이티드·영국항공·KLM 등 쟁쟁한 대형 사업자들이 각각 송·테드·고·버즈 등 LCC를 잇따라 출범시켰다. 하지만 이들은 3~5년 만에 사업을 접거나 매각하고 말았다. 현재는 독일계 루프트한자가 출자한 저먼윙즈, 네덜란드계 KLM그룹 소속인 트랜스비아 정도가 남아 있다. 한국항공대 윤문길(항공경영학) 교수는 “대형 항공사들이 고비용 구조를 고스란히 안고 가는 데다 기존의 관료 문화를 떨쳐내지도 못하다 보니 수익이 날 수 없는 구조였다”고 설명했다.

 아시아권에선 사정이 사뭇 다르다. 미국·유럽에선 이미 사라졌지만 아시아·호주 등에선 대형사의 LCC 설립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호주 콴타스, 일본 전일본공수(ANA)·일본항공(JAL), 싱가포르항공, 태국 타이항공 등이 투자한 LCC들이 주목받는다. 한진칼홀딩스가 지분 100%를 보유한 진에어도 여기에 포함된다. 지난해 3월 설립된 홍콩 최초의 저비용 항공사인 홍콩익스프레스 역시 하이난항공이 소속된 HNA그룹의 자회사다. 윤 교수는 “조금 더 두고 봐야겠지만 아직까지는 성공적”이라며 “적극적으로 해외 틈새 시장을 개척하고 모기업의 경영·운항·정비 노하우를 전수받은 것이 미국·유럽계 LCC와 구별되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LCC 업계도 성장 비결로 노선 개척을 첫손가락으로 꼽는다. 업계 1위인 제주항공은 2012년 9월 인천~괌 노선을 띄워 재미를 보고 있다. 지난해에만 50만 명 넘게 실어 날랐다. 국내 여행 수요를 제대로 예측해 대박을 친 것이다. 진에어는 인천~비엔티안(라오스) 노선에 2012년 3월부터 주 2~3회씩 취항하고 있다. 국내 항공사 중 유일한 비엔티안 행이다. 진에어 관계자는 “보잉 737기(좌석 180여 석)를 운항하는데 올해 평균 탑승률이 84%에 이른다”며 “대표적인 노선 발굴 성공사례”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까지 4년 연속으로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올해 예상 매출은 3600억원으로 지난해(2833억원)보다 30% 이상 성장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항공사 경영 노하우와 운항·정비·훈련·정보기술(IT) 지원 등 주요 인프라를 지원받는 것은 물론이다.

 아시아나 역시 새롭게 설립되는 LCC를 통해 전체 노선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 측은 “급변하는 항공 시장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LCC를 모델로 하는 자회사 설립이 가장 최선이라고 봤다”며 “아시아나의 중장거리 프리미엄 서비스에 LCC의 실속 있는 가격 혜택을 더하면 소비자 선택권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성장이 유망한 ‘하늘길 시장’으로 꼽힌다. LCC 시장은 잠재력이 더욱 크다. 미국·유럽 시장에서 LCC 점유율은 25~40% 수준이다. 반면 아시아, 특히 동북아는 아직 10%가 되지 않는다. 아이엠투자증권 주익찬 연구원은 “아직 두 자릿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성장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뜻”이라며 “최소한 점유율이 20%대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형 항공사가 주도하는 LCC 시장은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주익찬 연구원은 “‘장거리는 모회사, 단거리는 자회사’ 식으로 역할 분담을 하게 되면 오히려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후발 주자인 자회사 LCC가 모기업이 차지한 시장을 파고 들어가는 ‘카니발리제이션(잠식효과)’이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상재·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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