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 공산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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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적색은 공산주의의 「심벌」이다. 적색으로 밀폐된 방에 사람이 갇혀 있으면 끝내 정신 열이 일어나고 만다. 붉은 색은 그만큼 사람을 흥분시키며, 때로는 유혈을 연상하게도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최근 서한의 신문들에는 「백색 공산주의」의 대두에 관한 논의가 분분하다.
영국·벨기에·스웨덴은 물론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의 공산당 지도자들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요구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거부함으로써 적색 공산주의에 대한 도전을 시작했다.
가까이 일본의 경우도 공산당은 「미소 짓는 정당」「독기를 뺀 정당」으로 「데뷔」하고 있다. 그들은 용어까지도 바꾸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말 대신 「프롤레타리아 집권」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위로는 천황제를 존중하고, 아래로는 신앙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공언한다. 별로 어색하지도 않게 사회주의제를 존속시키겠다고도 말한다.
프랑스 공산당의 「마르세」 서기장과 이탈리아 공산당의 「베를링구에르」 서기장은 지난해 12월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공동 성명을 발표했었다. 『사회주의의 건설은 어디까지나 정치·경제·사회 생활의 민주화를 도모하는 가운데 실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보드카」 (소련의 화주)가 아닌 포도주를 마시는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는 「마르세」의 관문이 더 실감이 있다. 「마르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재라는 말은 우리의 소망과 경제에 상처되는 참을 수 없는 뜻의 말이며 「프롤레타리아」란 말도 봉급 생활자가 지배하는 사회에선 더 이상 적합치 않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백색 공산주의」의 미소를 보는 눈은 한결같이 부드럽지만은 않다. 파리 대학의 정치학 교수는 「뒤베르지에」 같은 학자는 유권자들이 백색 공산당에 투표하는 것은 다만 보수적인 우익에 항의하는 뜻 이상은 아니라고 말한다. 최근 일본 자민당의 「시이나」 부총재도 『전후 30년의 보수당 독재 정권 아래서 빚어진 「록히드」의 「스캔들」 따위가 백색 공산주의를 가능케 하고 있다』는 자성론을 폈다.
요즘 「베를린」서 열렸던 「유럽」 공산당 대회에서 『서방의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와 동방의 『바르샤바 조약 기구를 동시에 해체하자』는 「브레즈네프」의 주장은 공산주의의 현실을 뒤집어 보여주는 발언이기도 하다. 소련은 이제 더 이상 자신만을 고집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탈소 독자 노선- 그러니까 백색 공산주의를 현실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음미해 보아야 할 것은 「뒤베르지에」 교수의 뼈 있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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