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게 퇴짜 맞고 친노 압박에 밀린 안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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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8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문 의원은 “기초공천을 다시 묻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기자들 의 질문을 받고 “여러 가지 논의가 있는 게 당연하다”며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 있으니까요”라고 답했다. [김경빈 기자]

새정치민주연합에서 기초선거(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무공천 문제를 ‘당원에게 묻자’고 처음 제안한 건 문재인 의원이었다. 문 의원은 지난달 24일 부산지역 언론사 정치부장단과의 간담회에서 “새누리당이 ‘게임의 룰’을 바꾸려는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민주당만 무공천할 경우 일방적인 선거 결과가 우려된다”며 “무공천이 필요한 이유를 당원들에게 묻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그동안 무공천 원칙을 거듭 강조했지만 8일 “국민과 당원의 뜻을 묻겠다”며 후퇴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영수회담 ‘퇴짜’를 맞은 다음 날 문 의원의 제안을 받아들인 모양새다. 그래서 안 대표가 문 의원으로 대표되는 친노진영과의 기싸움에서 밀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문 의원의 발언 이후 당내에선 “전 당원 투표로 당론을 정해야 한다”(3일 우상호 의원)거나 “전 당원 투표로 무공천을 철회해야 한다”(6일 정청래 의원)는 의견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익명을 원한 한 최고위원은 “친노가 이렇게 몰아간 것 아니냐”고 불만을 나타냈다.

 ‘여론조사+당원투표’ 결정을 발표하기 직전 당 지도부가 문 의원의 의견을 들은 것도 친노그룹과 강경파들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김한길 공동대표는 안 대표와의 심야회동 직전인 7일 오후 3시쯤, 직접 국회 의원회관을 찾아 문 의원과 이 문제를 상의했다. 이 자리에서 문 의원은 “당원과 국민 뜻을 물어서 결정하면 되지 않겠느냐. 당원들만 투표하면 (무공천 원칙이) 뒤집힐 가능성이 높으니 국민 의견까지 5대 5로 들으면 안 대표도 어느 정도 결과에 대해 납득이 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무공천 논란을 통해 당내 세력구도가 드러났다는 평가도 있다. 무공천 원칙을 관철하며 신당 창당 명분을 지키려는 안 대표 측 세력은 송호창 의원, 무소속 신분에서 새정치연합에 입당한 강동원·박주선 의원 등이다. 여기에 김한길 대표를 중심으로 옛 민주당 출신인 정성호 원내수석부대표, 노웅래 사무총장, 최재천 전략홍보본부장, 최원식 전략기획위원장, 민병두 의원 등이 안 대표와 생각·노선이 같았다. 무공천 투표 결과와 6·4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 이들과 친노·486 등이 주도권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안 대표의 전격적인 ‘무공천 재검토’ 발표로 당은 또 한 번 홍역을 앓았다. 조경태 최고위원은 “여론조사 방식으로 하는 건 바보 같은 결정”이라며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새누리당을 비판할 수도 없다”고 반발했다.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김부겸 예비후보는 “야당은 여당보다 더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5일 “불리해졌다고 무공천 약속을 뒤집으면 국민에게 쓰레기 취급을 당할 것”이라고 했었다.

 반면 무공천 철회를 주장해 온 인사들은 사실상의 ‘재검토’ 결정을 반겼다. 정세균 의원은 이날 의원총회에 참석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세상에 안 뒤집히는 게 어딨어”라고 했고 박지원 의원 역시 “여론을 수렴하는 게 새 정치고, 자기 주장만 고집하면 오래된 새 정치”라고 주장했다.

 안 대표 측은 여론조사·당원투표를 통해 결국 무공천 유지 쪽으로 결론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당에서 비공개로 당원들과 국민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무공천에 찬성하는 답변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무공천 철회를 예상하는 사람들도 많다. 당 관계자는 “당이 공식적으로 무공천 입장을 유지했을 때의 조사와 무공천을 재검토하기로 한 이후의 조사는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동안 이 문제를 두고 당 안팎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엇갈린 결과가 나왔다.

글=이소아·하선영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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