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재임용제 시행을 기회로 본 그 실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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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여교수>
여교수가 되는 길은 남자의 경우보다 훨씬 어렵고 까다롭다. 아직도 사회 밑바닥에 깔려있는 남존여비사상 때문인 것 같다는 어느 여교수의 말이다.
현재 전국 98개 국·공·사립대에 근무하고 있는 여교수요원(전임강사 이상)은 모두 9백99명으로 전체 교수 1만9백95명의 9·09%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18명이 총·학장 등으로 활약하고 있지만 주요 보직은 남 교수들이 독차지하고 있는 실정.
이 때문에 여교수 지망자들은 여자대학으로 몰리고 있지만 『모교 출신 우대』라는 배타주의적 채용 방법 때문에 진출 기회는 더욱 줄어든다는 것.
남녀공학인 S대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몇 달 전 S대에서 자연과학계 전공 교수 12명을 공개 채용했다. 응모자 30명 가운데 여자 5명은 대학당국이 요구하는 박사학위 등 제반 요건을 갖추었으나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탈락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의 여교수요원은 전임 강사급 이상 8백79명 가운데 불과 35명. 이들은 거의가 가정대와 음대 등 특정대학에 몰려있다. 서울대 P여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쿼터」제를 도입, 남녀 채용 비율을 법으로 정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여교수들은 『여성은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전통적 관념 때문에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는다고 했다.
강의·연구·학생지도에 힘쓰다 보면 며느리·아내·주부로서 모두 실격 판정을 받고 만다는 것.
D대 J여교수(47)는 대학을 7년6개월만에 마친 만학도. 졸업과 동시에 결혼식을 올리고 그는 곧장 대학원에 진학했다.
석사학위 논문을 작성할 때 남편 S대 K교수(46·국어학 전공)는 청소와 식사준비까지 해야만했다.
그러나 애를 업고 달래며 강의록을 준비하느라 밤잠을 설치는 아내의 집념을 보면 대견스럽게 생각된다고 K교수는 말한다.
여교수들 가운데 휴직·퇴직이 많은 것은 남편중심의 가정생활 때문.
남편의 직업이 외교관일 경우 여교수들은 「파티」 등 공식적인 모임에 참석하느라 연구활동이 부실해지기 일쑤. 또 걸핏하면 해외 주재관으로 발령되기 때문에 한 두 번 휴직계를 제출하다 끝내 사표를 내는 경우도 있다. S대 L교수는 최근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세 번째 출국하면서 사표를 제출했다.
또 2남 1여를 둔 K대 C교수는 자녀들의 뒷바라지 때문에 지난 2월 사표를 냈다.
C교수는 『가정과 학문을 양립시킬 수 없었다』며 『연구실만 마련되면 취미 삼아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부교수의 경우에는 심오한 학문세계에서 서로 이해하고 보완할 수 있어 원만한 가정생활과 연구활동을 누릴 수 있다는 것.
김춘수 교수(43·한국과학기술연구소 동물사료 연구실장)와 부인 장윤경씨(43·전 경희대 강사)는 미국에서 식물학을 전공, 박사학위를 획득한 부부박사.
김 교수는 누에의 합성사료를 개발하는데 부인 장씨의 「아이디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흐뭇해했다. 자녀교육 때문에 잠시 쉬고 있는 장씨는 『애들만 크면 다시 연구작업을 계속하겠다』고 결의가 대단하다.
여교수들은 외길을 쫓아 연구활동에 몰두하다 보면 자칫 혼기를 놓치기 쉽다. 교수 지망생들을 둔 부모들의 걱정거리도 과년한 딸의 결혼 문제.
이화여대의 경우 전임강사 이상 교수요원 3백40명 가운데 여교수가 절반인 1백68명.
이들 가운데 20% 가량이 독신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독신교수들은 가정생활의 큰 부담을 안고 있는 기혼자들보다 강의와 연구활동에 좀더 전력투구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대 K교수는 『독신주의가 아니라 나이가 차지 않아 기다리고있는 상태』라면서 웃어 넘겼다.
여교수들은 남교수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가끔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학생지도에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기도 한다. K대 C교수는 학생들의 「카운셀러」 역할을 맡느라 강의가 소홀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남학생들은 가정·이성·교우관계 등 미묘한 고민을 이성인 여교수에게 쉽사리 털어놓는다는 것.
S대 L교수(가정대)는 학장보 회의 때 홍일점으로 참석, 가정대의 발전을 위해 보수적인 남교수들의 고루한 사고방식을 일깨운다고 했다.
여교수들은 교수채용과 승진에 남녀차별을 없애 강의와 연구활동으로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공평하게 부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원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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