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비 해외 유학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해외 유학제도 개선책」은 해외 유학생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좀더 유효 적절하게 활용하려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의사를 담고 있다.
해외에 나가 외국의 발전된 문물과 학문을 배우고 받아들여 이를 내 나라의 발전에 이바지하게 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유익한 일이다. 더구나 근대화를 앞당겨 감수해야 할 나라로서는 젊은이들을 널리 해외에 보내, 그들의 문물과 과학기술 등을 터득케 하는 것은 거의 필수적인 요건이랄 수도 있겠다.
한말의 「신사 유람단」은 그만두고라도, 8·15후 급증한 구미 유학이 신생 조국의 「엘리트」 양성에 얼마나 크게 기여했던가는 아무도 부인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21년간의 유학생 총수 1만2천9백70명 가운데 귀국자가 고작 24%밖에 안 된다는 사태는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 통계 숫자가 사실일진대 지금까지는 해외 유학이란 결과적으로 76%의 두뇌 유출을 장려한 것밖엔 안 되는 셈이다. 더 자세한 조사에 따르면, 유학생 가운데 해외 연구소 근무가 32%, 해외 대학 근무자가 2백11명이라는 통계도 있고 보면 기이한 느낌마저 없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해외에서 연구를 계속하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나 유익한 경우도 물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듯 다수의 우수한 유학생들이 해외로 빠져나간 채 귀국을 기피하는 현상을 빚고 있다면 그 책임은 물론 유학생 자신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귀국 후의 연구 활동 가능성과 이들의 취업 보장이나 적절한 대우 수준이 확실치 않은 한, 그들의 귀국 기피를 무턱대고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해외 유학 제도를 국가적 이익이라는 요청에 부응시키기 위해서는 불가불 국비 유학생 제도를 대폭 확충하는 도리밖엔 없을 듯 하다.
다시 말해 국비 유학생 제도는 해외 유학생의 숫자와 전공 분야를 국가적인 인력 수급 계획에 맞도록 조절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며 적절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외국 대학에서 실존철학을 전공해 외국 대학에서 교편을 잡는 사람』보다는 『외국 대학에서 이공학을 전공해 한국의 산업 기술의 발달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배출될 것이다.
국비 유학 제도는 또한 연간4천5백여「달러」의 학비를 조달하기 위해 「접시 닦기」를 하느라고 힘겨운 고생을 하다가 결국에는 도중하차를 해 버리고 마는 탈락자들의 수효를 줄이는데도 적지 않이 기여할 것이다.
또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유학생 가운데 결코 적은 숫자라고 볼 수 없는 사치성 「유학생」이나, 「관광 유학」 「도피성 유학」 「무작정 유학」에도 적절한 제동이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재질이 별로 신통치도 않은 사람이 아까운 외화를 들여가며 외국에 나가, 별로 신통치도 않은 짓을 배워 가지고 와서는 공연히 불평이나 늘어놓는 따위의 풍조도 이로써 어느 정도 규제가 될 것이다.
이점에서는 당국이 이번 개선책으로써 적격자의 선발 못지 않게, 파견 이후의 견실한 생활 태도와 조국에의 일체감 유지를 유도하겠다는 의도는 긍정적인 허가를 받을 만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정선된 신진 기예를 국가 사회의 동량 지재로 키우는 것을 취지로 했을 이번의 고유 번호제나 연반 조직제 또는 신상 「카드」제 같은 것이 자칫 해외 유학의 문호를 불필요하게 좁혀 놓거나, 유학생들의 마음에 혹시라도 정신적 부담을 더 해주는 결과만은 빚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가뜩이나 낮선 이역에서 향수에 젖어 있을 젊은이들에 대해 옛날 「사감 선생님」같은 한기보다는 자부와 같은 따스함이 오히려 더 큰 호소력을 발휘할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