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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낫한 스님, 대구지하철 희생자 유가족에 위로 메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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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혜의 눈으로 주의깊게 보면 만물에 본래 태어남과 죽음이란 없습니다. 순간 순간 그 모습을 달리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번 대구지하철 참사로 먼저 떠난 사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이제 그들은 여러분 가슴 속에 살아 있습니다….”

베트남 출신의 틱낫한(77)스님이 26일 대구 중앙로역-분향소 간 ‘걷기 명상’과 헌화에 이어 오후 7시 경북대에서 가진 ‘고통을 넘어 희망만들기’란 강연회에서 이렇게 잔잔히 법문을 펼쳤다.

이날 강연장 대강당은 2천여석이 빼곡히 메워졌고 입장하지 못한 1천여명은 대강당 앞 마당에 앉아 스크린을 보며 강연에 귀를 기울였다.

틱낫한은 먼저 자신의 아픈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베트남 전쟁동안 제자 5명이 강변에서 총살 당하는 등 가족과 제자·도반을 잃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저는 꽃다운 죽음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겼고 몇일동안 슬피 울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잃어서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자비의 힘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를 도울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고 한다.

“지하철 참사로 슬픔에 잠긴 희생자 가족과 대구시민들에게도 그 희망을 전하고 싶습니다. 고통을 넘어 희망을 향한 참선방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이 수행법이 금강경의 정신에 입각해 재구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구름과 종이를 비유해 만물은 무상(無常) 의 세계임을 누구나 알기 쉽게 설파했다. 구름은 어느 순간 눈앞에서 사라지지만 그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로 그 모습을 바꿀 뿐이라는 것이다. 종이 한장을 들어 보이며 ‘종이의 생일은 언제일까’라는 물음도 던졌다.

공장에서 종이가 만들어지는 날이라고도 할 수 있고 그 이전에 나무 형태일 때가 생일일 수도 있을 것이라며, 태어남은 본래 없다고 덧붙였다.

스님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언제 어떻게 모습을 달리 할 지 모르기 때문에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서로 사랑하라”면서 “이제 대구시민들도 지혜의 눈으로 죽음을 넘어 자비를 실천하라”며 2시간 반에 걸친 대강연을 마무리했다.

설법 전후엔 프랑스 플럼빌리지에서 온 십육나한 제자들이 지하철 희생자를 위한 관세음보살을 나직히 염불했다. 스님은 대구의 땅에 자비가 가득할 것을 간절히 기원했다. 강연이 진행되는 동안 참석자들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쉬면서 명상 수행에 잠겼다. 스님과 불자·시민, 그리고 수녀들도 함께 해 큰 감명을 받은 자리였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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