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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형」 진출 뚜렷한 금융계 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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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사실 지금과 같은 관 주도 금융체제 아래선 은행장을 비롯 대폭적인 금융계 인사라해도 대세에 별로 영향이 없다. 금융기관의 자율적인 재량의 폭이 너무 빤하기 때문에 은행장이 갈린다 해서 은행의 경영 방침 등이 바뀌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누가 하나 마찬가지다. 정부의 강력한 원격조종 아래 좁은 행동 반경에서 나마 최선을 다해서 경쟁하고 창의적으로 뛰라는 것이 김용환 재무장관의 기본 인사 방침이며 요구다.
관록과 권위로 군림하는 은행 경영자보다도 실지론 일선에서 스스로 뛰고 또 행장일을 만드는 실무형이 발탁된다. 권위형은 점차 탈락한다. 이번 금융계 인사에서도 이런 기본 흐름이 그대로 반영됐다.
몇 년 전과는 달리 은행 인사에선 외부의 작용은 거의 무력화하고 재무부도 일단 단일 창구화 했다. 외부에 의한 인사 간여를 김 재무는 거의 조건 반사적으로 반발한다. 얼마 전 어느 은행의 부장이 간접적인 인사 청탁을 했다가 은행장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사실을 아는 금융계에선 인사철만 되면 전전긍긍한다. 가만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움직이자니 잘못하면 역효과를 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번 재무부와 금융계의 인사에서도 김 재무의 평소 소신이 많이 부각된 것 같다. 「정치형」의 탈락과 「실무형」의 진출이다. 고태진 조흥은행장은 「보스」 기질이나 행동폭에서 시중 은행장 중 별격의 존재이지만 요즘 요구되는 온순하고 섬세한 규격과는 거리가 멀고, 김우근 중소기은행장은 「세일즈맨」이 돼야 할 은행장이라기보다 관료적 체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다는데서 일단 도중하차한 것 같다.
부실 신탁은행을 맡아 상당한 실적을 올린 심원택 행장에게 자리를 마련해 줘야 한다는 현실적 요구가 고 행장의 퇴임을 재촉했다.
남상진 차관의 중소기업 은행장 전출은 2년5개월 동안 재무 차관으로서 일체 잡음을 내지 않고 조용히 처신한 데 대한 「보너스」적 예우라고 보면 된다. 유능과는 좀 거리가 있지만 외곬이고 청렴 성실하게 20여 년 동안 공직생활을 해 온 남 차관에게 마지막 꽃길을 열어 준 셈이다.
조충훈 전매청장의 차관 발탁은 김 장관의 취약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조처라 볼 수 있다. 조 차관은 특히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적응 폭이 넓어 「차관의 분수」를 결코 넘지 않으면서 재무부의 안 살림을 기막히게 꾸려 갈 것 같다. 신설되는 수출입 은행을 송인상 전 재무장관에게 맡긴 것은 그 동안 「벨기에」대사로서 의욕적으로 활동한 행동력과 폭 넒은 국제 금융 식견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새로 합병·발족되는 서울 신탁은행장에 윤승두 한일 은행장이 발탁된 것은 합병 은행장에 서울신탁 어느 은행 출신도 아닌 제3자를 앉힌다는 것과 그 동안 윤 행장이 보인 경영 실속과 새 은행의 인화를 위해 특히 필요한 원만한 성격을 배려한 것 같다.
서정국 국민은행장의 금융단 연수원장 전임과 김영덕 서울은행장의 증권금융사장 전출은 두 사람의 적성을 살린 것 같고 한일은 김정호 전무가 행장으로, 상업은행 이경수 전무가 국민은행장으로 승진한 것은 실무 우등생에 대한 포상이라 할 수 있다.
정재철 산은부총재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전출은 「부」에서 「장」이 된다는데 뜻이 있다. 이건중 재무부 증보국장의 조달청차장 승진은 본인에겐 승진의 꽃길을 열어 주면서 재무부 본부 국장급 진용을 젊고 빈틈없는 김 재무 「스타일」로 짜 보려는 배려인 것 같다. 신임 이동호 증보국장은 적격의 성실 실무형이다.
정춘택 조달청차장의 산은 부총재 내정은 금융계가 성역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확인시킨 셈인데 곧 재무부 국장급에서 외환은행 이사로 또 한사람 전출될 전망이다.
오는 9월로 취임 2주년을 맞는 김 재무는 몇 차례의 파격적인 인사를 통해 재무부나 금융계 등 산하 기관의 진용을 김 재무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방향으로 과단성 있게, 또 사명감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능력 있는 신예가 등장하고 연륜과 서열은 크게 고려되지 않는다.
그러나 능력이나 일 본위도 그 평가는 「김 재무의 기준」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오랜 연공서열주의에 젖어 온 금융계에선 감히 드러내 놓고 말은 못하지만 섭섭해하는 사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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