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新전쟁 문화코드] 5. 美 수퍼무기 對 테러·게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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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자(子) 하나가 역사를 바꿨다. 알다시피 등자는 말을 탈 때 사용하는 간단한 기구다. 올라탈 때에는 발 디딤이 되고 달릴 때에는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1500년전에 고안된 이 등자는 중무장을 한 사람이 말을 타고 최고 속도로 달리면서도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기사(騎士)들을 출현시켰다.

보병을 무력화한 이 혁명적인 전투방법은 중앙집권적 정치권력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이 바로 기사도와 성채만 있으면 쉽게 자기 영토를 구축할 수 있었던 중세의 봉건제다.

그러나 다시 대포가 역사를 바꾼다. 처음에는 적들의 말을 놀라게 할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대포가 공고한 성채를 부수고 기사를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봉건제도는 빛을 잃는다.

결국은 포병장교 출신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는 세상, 용병이 징병제의 국민병으로 바뀐 근대의 국민국가가 등장하게 된다.

*** 정보혁명 무기에도 '제3의 물결'

규모나 기술에서는 천지 차이가 있으나 이를 만들어내는 ABC기술은 나폴레옹 때부터 싹튼 산업주의 시대의 대중문화(mass culture)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존 엘리스가 기관총의 사회사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매스를 대상으로 한 대량살상무기는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산업주의 시대를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근본적으로 핵(atomic).생물(biologic).화학무기(chemical)의 ABC기술 코드는 대포와 마찬가지로 산업주의 문명 코드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미국의 정보 RMA(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는 약자가 의미하는 그대로 정보혁명이라는 새 기술의 등자가 몰고 온 신무기 시스템이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그냥 대포가 아니라 그 대포알 속에 표적물로 정밀 유도하는 두뇌, 즉 정보장치가 되어 있는 무기다. 그러기 때문에 교량 한개를 파괴하는 데 2차대전 때는 평균 2백~2백40t의 폭탄을 투하하던 것을 베트남전 중반에는 12.5t, 걸프전과 유고슬라비아의 폭격에서는 4t이면 충분했다.

아프가니스탄 전투에서는 1만m의 높은 고도에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유도폭탄을 투하해 탈레반의 동굴을 하나하나 확실하게 파괴했다.

이렇게 무기시스템은 문명-문화를 독해하는 코드로 작용한다. 말의 등자가 봉건시대.농경시대의 문명에 속하는 제1의 물결이라면 앨빈 토플러 자신이 그의 저서 '전쟁과 평화'에서도 암시하고 있듯이 WMD(대량살상무기)는 제2의 물결인 산업문명, 그리고 RMA의 무기시스템은 제3 물결의 정보문명 코드에 속한다.

3m의 오차범위에서 이루어지는 정밀한 폭격은 오히려 산업시대의 기관총이 아니라 농경시대의 창이나 화살 무기와도 같은 것이다.

한마디로 한 포인트 한 포인트를 겨냥한 맞춤식 무기는 대량살상무기와는 코드가 다르다. 가령 이라크전에서 GPS유도탄은 제3 물결이지만 유전을 불태워 그 연기로 통신위성을 막는 것은 제1의 물결이다.

이렇게 코드 분석을 통해 읽어가면 왜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초강국, 세계 전 군사비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막강한 유일 초군사대국이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지를 안다.

한마디로 미국의 가치관이나 외교방법에 도전하는, 이른바 전사 집단 혹은 그들을 돕는 나라들은 RMA의 군사시스템과는 다른 무기와 전투방법을 택하려고 한다. 그것이 RMA와 비대칭형을 이루는 WMD와 선전포고와 종전 협정이 없는 영구전쟁 테러와 게릴라전이다.

신전쟁은 미국만이 겪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21세기형 문명을 지향하는 모든 나라가 치러야 할 벌판이다.

그러니까 신전쟁은 공간 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평전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선상에 위치하여 싸우는 수직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을 지정학적인 공간 위에서 벌어지는 것으로 보았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충돌 양상을 보면 문명단계의 시간 위에서 벌어지는 문명충돌이라는 점을 체득할 수 있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충돌이 아니라 제3의 물결 대 제1의 물결 혹은 제3의 물결 대 제2의 물결이 충돌하는 양상인 것이다.

*** 9.11 테러는 새 전쟁의 개막

그러한 전쟁의 개막이 바로 상상을 초월한 9.11 테러였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정보 RMA의 군사력을 상징하는 펜타곤과 세계화를 지향하는 세계무역센터의 그라운드 제로는 타임터널처럼 제2물결이나 제1물결을 오가는 타임터널이 되며 그 타임터널을 오가면서 신전쟁의 파노라마가 나타난다.

한자의 나라 국(國)자를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자. 성벽을 뜻하는 네모난 사각형이 둘이나 들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무기를 뜻하는 과(戈)자가 붙어 있다.

세계화라고 하지만 아직도 나라에는 보더 라인이 두개씩이나 자신을 에워싸고 있으며 무기가 자신이 살고 있는 문화와 문명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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