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8일의 어버이날을 마지막으로 가정의 달 5월의 푸짐한 행사들은 대단원을 이루는 감이 있다.
어린이날과 성년의 날에 이어 맞게되는 이날의 의미는 세월의 흐름을 따라가는 인생연륜의 축적과 더불어 더욱 무르익고 깊어 가는 삶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려는 것이다.
희망과 의욕으로 표상 되는 젊은이들의 날에 비해 어버이날은 비록 생동적인 면이 부족하고 회고적이라 하더라도 보람있는 행사임에 틀림없다.
말할 것도 없이 이날은 어버이의 은혜를 기리며 어버이를 위안하는 계기로서 먼저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긴 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던」어버이의 사랑과 노고는 분명히 이 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크고 넓은 것이다. 1년 중 하루의 은혜보답 행사로 충분히 보은의 기회가 마련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을 기회로 어버이에 대한 감사의 경과 보은의 뜻을 다지는 것은 한 사회집단의 윤리적 연대를 강화하고 풍속을 순화하는데 적지 않은 효과가 있음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날 강조되는 자식의 보은과 「효도」에 못지 않게 더욱 중시돼야할 것은 어버이의 「어버이됨」이다.
어버이와 자식의 관계는 분명히 일종의 천륜이라 할 기본적인 인륜관계로, 얄팍한 이익추구 때문에 흔들리는 관계는 아니다. 자식은 어버이를 어떤 이득 때문에 섬기는 것이 아니며 오직 어버이이기 때문에 섬기는 것이다. 또 어버이의 자식사랑도 본질적으로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자기투신일 뿐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어버이들은 「어버이됨」의 지반을 잃고 자식과의 상호성을 몰각한다는 탄성까지 들려오고 있다.
실제로 어떤 어버이는 가난을 핑계로 어린 자식을 구걸이나 행상에 내놓는가 하면 심한 경우엔 길에 내다버리기까지 한다.
자식사랑의 인간적 본성이나 부양하고 교육할 의무와 책임은 간단히 던져버리면서도 자식들의 불손을 탓하며 부모봉양의 미덕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어버이들도 있다.
비록 이런 극단적인 인륜파괴의 양상에까진 이르지 않았다 해도 당대 어버이 대 자식관계의 부조는 많은 경우 심각한 국면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날 동양윤리의 근본을 이루었던 효도를 역설할 때에도 부모의 「자애」가 늘 이에 못잖게 강조되었지만, 자유주의가 팽배하는 오늘에 있어 이 부조의 가족관계를 바로잡기 위해선 어버이의 어버이된 역할이 더욱 강조필 수밖에 없다.
어버이의 역할의 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에선 전통적으로 아버지의 근엄과 위신이나 어머니의 다사롭고 헌신적인 사랑이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 같은 어버이의 역할이 반드시 오늘의 시대조류에 합당한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거기엔 뚜렷한 질서와 책임, 그리고 사랑의 형태가 있었다. 가정을 지탱하는 어버이의 권위와 믿음의 근거가 분명히 여기서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질주의의 위협 때문에 권위가 흔들리고 신뢰감을 잃고 있는 오늘의 어버이들이 사랑의 실천과 책임의식 가운데서 『어버이 된 자신』을 되찾으려는 성실한 노력이 있어야 함은 분명하다.
어버이의 위신은 물질주의시대에 있어선 재력과 권력에 유린되기 쉬운 허약한 것이지만, 정신적·도덕적 일관성을 통해 자녀들의 사랑과 신뢰를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오늘날 어버이의 권위는 위압적이고 형식적인 것으로서가 아니라 자녀들의 믿음과 사랑의 보증자로서 되살려져야한다. 권위
분명히 모든 사회적·정신적 권위가 사라지고 혹은 악의적으로 말살되는 시대에 있어서도 어버이의 권위는 가정의 평화의 상으로서 살아남을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