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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체계의 탄력적인 운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현행의 금리체계가 너무 경직적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한은 총재의 평가는 사뭇 이색적이다. 그것은 두 가지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끈다.
하나는 그 같은 논평이 명목상으로나마 통화신용정책을 통할하고 있는 최고책임자의 「코멘트」인 점이다. 이런 일은 기이하게도 매우 드물었다. 통화가치를 안정·유지하는데 1차적인 관심을 가져야할 중앙은행이 그 고유업무의 내용이나 정책방향에 대해 평가하는 일은 하등 기이한 일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 총재의 이번 논평이 이색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종래 일반국민들은 이런 논평에 접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통화정책의 행정부 주도라는 특수한 정책 상황과 연관되고 있기 때문에 일반에게는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이런 현실이 정상인 것처럼 여겨져서는 곤란한 것이다. 중앙은행이 보다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고유의 업무에 대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일은 통화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일과 결코 상치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통화금융정책 당국간에 협조와 견제의 기능이 되살려지면 그만큼 정책효율도 높아지고 시행착오의 여지도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현행 금리체계가 너무 경직적이라는 중앙은행의 평가 자체도 주목할 만 하다.
금리정책이 통화정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줄기를 이루고 있는 한, 어떤 경우에도 탄력을 잃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점에서 자금수요에 따라 금리를 신축성 있게 다루어야 한다는 김 총재의 평가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겠다. 현행의 금리체계가 비탄력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것은 금리체계 자체의 불합리에도 연유하지만, 그보다는 금리정책의 유용성을 과소 평가하는 전통적 인식에 더 큰 영향을 받고있는 것 같다. 이런 인식은 수로 우리의 특수한 자본축적경험 때문에 금리가 자금수요를 유효하게 조절하는데 기여하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금리변화가 자금수요를 유효하게 조절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금수급에 큰 격차가 없어야 한다.
자금 부족부분의 항상적인 과다수요가 존재한데다 「인플레」의 장기화까지 겹쳐 금리정책의 실효성은 크게 저하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의 금리정책에서 「유러달러」나 미국의 금리가 가지는 수요조절기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긴축과정에서 일반적인 금리인상이나 지준률 인상정책이 반드시 유익하기만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과도한 자금수요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한다는 주장은 결국 일면적인 타당성밖에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아직 경기회복이 본격화되지 않은 시점에서 과격한 금리인상이 경기의 회복을 저지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때문에 금리인상은 좀더 시간여유를 가지고 하반기쯤에 검토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예대금리의 대폭인상 보다는 복잡하고 다양한 금리구조를 개편하는 일이다. 차등금리제가 너무 보편화되고 있는 현행 금리구조는 산업간. 기업간의 일반적인 경쟁조건을 크게 제약함으로써 이미 경제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시점에까지 와 있다. 이를 회피하는 길은 금융정책에 관한 한, 차별적인 금융지원을 불가결한 부문에만 국한시키고 되도록 금리체계를 단순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경제적 효율뿐 아니라 금리체계의 탄력적인 운용에도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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