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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저」의원의 발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가 지금까지 일부 미국정치인들의 가시 돋친 대한발언에 대해서도 은인 자중해 왔던 까닭은 한국 민의 대다수가 최소한 그들의 우호적 동기만은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금 보도된 바 「도널드·프레이저」미 하원의원의 상식을 벗어난 발언은 그와 같은 한국국민의 따뜻한 심정을 완전히 짓밟는 악의 섞인 언사라 아니할 수 없다.
외신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의원은 미 상원 대외원조 소위원회에서의 청문회 증언을 통해 설사 전 한반도가, 공산화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미국은 물론 일본의 안전에도 아무런 위험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발언이 전제하고 있는 일방적인 정세판단의 오류를 지적하기에 앞서 그 같은 발언이 한국의 안보와 전 자유국가에 대해 끼칠 위해의 가능성을 먼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가 공산화되더라도 일본을 포함하는 전 동북아의 안정과 세력균형에 아무런 악영향이 없다니, 도대체 이것이 건전한 상식을 갖춘 한 나라의 책임있는 지도급 인사의 공적발언일 수 있겠는가.
굳이 전문가의 설명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만약 한반도가 적화된다면 동해와 「오끼나와」와 대한해협을 거점으로 하는 미일안보체제의 전략 망은 더 이상 지탱될 수가 없음은 자명한 이치다. 이 지성의 제해권과 제공권이 위태로와진 다음에 일본주변의 해상안전과 「하늘의 안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은 상식이며, 일본의 안전을 전제로 하지 않은 미국 서태평양 방위 망의 안전을 기대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가상해서 제주도가 붉은 「미사일」기지나 붉은 「불침항모」로 탈바꿈했다고 할 때, 그래도 일본의 바다와 하늘이 태평 무사하다고 장담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더욱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은 그 발언내용의 그릇됨 못지 않게, 그 발언이 뿌리박고 있는 발상의 「뉘앙스」다.
그 발언의 취지대로 한다면 「프레이저」의원은 대한민국의 국권과 한민족의 생존권쯤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는 말인가.
우리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일본열도의 안전 여부이기에 앞서 우리 민족 내 가정, 내 생명, 내 나라, 내 강토의 보전과 유지인 것이다,
만약 일본의 안전만 문제되지 않는다면 한국민 3천5백만의 생명과 자유쯤은 없어져도 좋다는 식의 명제는 우리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프레이저」의원의 발언의 진의가 만일 여기에 있다면 우리는 이 의원을 더 이상 정책토론의 상대역으로 간주할 필요나 의욕을 느끼지 않는다. 도대체 한국이나 한국 민에 대해 손톱만큼의 우의나 존경심을 가지고 있기는커녕 오히려『버려도 좋다』는 식의 발언을 서슴지 앉고 있는 사람과 더불어 어떻게 무슨 토론을 더 벌인다는 말인가.
곁들여 우리는 다른 모든 미국의 책임있는 지도급 인사들도 한국문제에 관한 토론과정에 있어 어디까지나 건설적이고 우정 있는 충언으로 시종해 줄 것을 거듭 당부하고자 한다. 그렇지 않을 때 이득을 보는 쪽은 바로 「프레이저」발언 때문에 정세를 오판할 수도 있는 북괴 침략집단밖엔 없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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