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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쓸모없이 돼버린 낙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두바이」시에서「아부마비」란 해안도시까지는 1백60여㎞로서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다. 해안을 끼고 직선으로 4차선의「아스팔트」길이 뻗어 있다. 이 도로시설도 모두 석유의 덕택으로 마련한 것이다. 이따금 야자대추나무가 많이 서있는「오아시스」가 보였다. 이런 풍경은 서「아시아」사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국정서가 넘치는 자연풍경이지만 고삐가 없는 자유로운 낙타 떼들이 한가로이 쏘다니며 사복지대에 띄엄띄엄 나 있는 풀을 뜯어 우물우물 먹는 모습은 매우 목가적인 풍경이다. 인도에서는 성우사상을 지녀서 소들이 자유로이 살듯이 이 나라도 혹 낙타를 성수로서 받들어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 하고 처음엔 생각했으나 이런 현상은 아마도 석유가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교통기관의 일대 혁명이 일어나서 낙타 대신 기름을 쓰는 현대교통기관으로 바뀌는 바람에 이젠 낙타가 별로 쓸모 없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4반세기전만 해도 낙타를 타고 어슬렁어슬렁 사막을 다니던 이들이 갑자기 최신형「세단」차들을 타고 다니는 것은 축복할 일이지만 하고많은 차들이 모두 성급하게 달리는지 차들이 서로 부딪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달리는 차들을 자세해 보니 우리나라 자동차들처럼 온전할 것이 없었다. 아마도「자동차부상·대회」를 연다면 틀림없이 세계 제1위를 차지할 것이다. 사고가 난 길옆에는 각성시키기 위해서인지 그대로 고스란히 놓아두고 있으나 운전하는 사람들은 아랑곳없다. 얼마 전만 해도 며칠을 두고 느린 낙타를 타고 다녀도 불평이 없던 이들이 자동차를 이렇게 사납게 모는 것은 알고도 모를 일이다.
월간지인「아부다비」는「아라비아」반도에서 조금 떨어진 산호초 섬에 있는데 다리로「하이웨이」가 이어져 있었다. 여기에는 각 처로 뻗은「오일·파이프」가 모여있으며 마침 바닷가에 초유공장을 세우고 있는데 대담한 설계였다. 고도건물들이 즐비한「메인·스트리트」바로 뒤에는 너무나도 대조적으로 빈민들의 오막살이집들이 보였다. 같은 국민이지만 기름의 혜택을 받는 자와 받지 못하는 자의 차이가 이렇게도 심했다.
더구나 당국에서는 석유로 번 돈을「하이웨이」의 가로수와 화단을 위해서까지도 정원사를 붙어있게 하여 줄곧 수돗물을 마음대로 뿌려주며 손질하고 있건만 수도시설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물이 귀한 사막에서 물을 길어 오기조차 어려우니 정부시책으로서 이런 모순이 어디 있으랴. 남의 나라지만 웃음이 없는 이 불행한 사람들을 보니 이들에게 은총이 베풀어지기를 바라는 기도가 절로 나오는 것이었다.
사막지대를 종횡으로 뻗는「오일·파이프」는 이른바「석유생명체」의 혈관과도 같이 보였다. 특히 남쪽의「타리프」지구는 제일 큰 석유의 산지로서 이 나라의 영광스러운 미래를 약속해주고 있었다. 이런 것들을 돌아보고는 내륙으로 향하여 산지에 있는「오만」토후국과의 국경도시「아라임」에 이르렀다. 「비자」를 얻지 못하여「오만」토후국은 이곳에서도 들어갈 수 없으나「오만」에서 오는「캐러밴」이며 국경너머의 산세를 볼 수 있는 것은 다행이었다. 주민이 3천명 가량밖에 안 되는 이「오아시스」마을에는 외국인들이 드는 숙소로는「딜럭스·호텔」밖에 없다.
나는 감히 이런 데에 들 수 없어 무료로 잠자리를 해결하기 위하여「모스크」(이슬람교사원)를 찾고있는데 골목에서 어떤 허름한 옷을 걸친 세 청년이 나를 보자마자『오, 형제여 멀리서 오셨군요!』하며 느닷없이 내 손을 쥐고 잔등을 두드리며 볼을 대지 않는가. 이것은「이슬람」교도들의 다정한 우정의 표현이다. 나도 반가와 몇 마디 배워둔「이슬람」말로『살라마 아레쿰』(안녕 하십니까)이라고 했더니『형제여, 저희 집에 가서 차나 함께 마십시다』한다.
그들은「파키스탄」에서온 전기기사들이었다. 두 사람은 결혼했으나 2년 계약으로 돈을 벌러 왔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숙소에서 함께 쉬자고 하며「버스」정류장에 맡겨둔 나의「록색」을 가져오는 친절까지 베풀어주었는데 과연 우정이 두터운「이슬람」교의 정신이었다.
이 세「파키스탄」청년들은 향수를 달래기 위하여 갖고 온 자기나라 민속음악의「카세트」를 틀어주었는데 우리나라 민요조를 닮은 것도 있었다. 「파키스탄」의「발루치스탄」에서 배운 이들의 민요를 내가 불러 주었더니『오, 형제여』하며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이 연합「아랍」토후국에서 뜻하지 않게「파키스탄」청년들을 만나 신세를 지었는데 다음날 떠날 때에는 이별을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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