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에 민정·민원「소나기」|정책·연구경쟁의 소산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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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치정당」아닌「정책정당」을 표방하고 있는 여당은 직능단체대표 초청간담회·소속의원간담회·정책소위활동 등으로「정책의 계절」을 맞고있다.
공화당사와 유정회 회관에는 지난3월23일 임시국회가 끝난 뒤 매일같이 2, 3차례의 각종 회의·간담회가 열리고 있고 동원되는 의원 수만도 하루 평균 15명 내외, 연인원 2백50명을 돌파.
5차례에 걸친 공화당의 지역별 간담회에서는 2백여 가지의 각종 민원·민정이 쏟아져 나왔으며 공화당의 7개 소위와 유정회의 8개 특위에서도 50여 가지나 되는 정책연구「테마」를 마련했다.
지난 월초부터 8일까지 계속된 공화당소속의원들의 도별 간담회에서는 의원들의 귀향활동에서 파악된 민원 등 문제점들이 분출.
전남도 의원 간담회에서 박삼길 의원은『여기 모인 사람 중 7분도 쌀을 실케 먹고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반문하고는『정부가 실현성 없는 정책을 구호만 내고 무리하게 추진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강타.
임인채 의원은『서구식의 6·3·3·4학제는 우리농촌 실정을 외면한 것』이라며『중학교만 나와도 밥벌이를 할 수 있는 기술교육이 필요하다』고 했고, 유기정 의원은『서정쇄신과 연공 가봉제 이후 공무원 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무사안일주의 풍조를 어떻게 시정하겠느냐』고 추궁했다.
박숙현 의원은 경북의원간담회에서『읍·면장의 임명에 있어 지방의 관리장급 이상 공화당원들을 소화시킬 수 있도록 인사규정을 수정해야한다』고 아전인수식 주장을 했으나 일부 의원은『면장이 이장으로 신민 당원까지 임명하는 사례가 있다』고 공개.
김상년 의원은『현재의 민방위훈련이 요식행위에 불과하다』『야간훈련과 소등훈련 등을 병행하라』고 요구하고는『각종 업소의 영수증을 통일시키고 복권을 첨부시키면 훨씬 효율성이 있을 것』이라고「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장과 새마을지도자가 분리돼있는 농촌에선『새마을지도자가 이장을 제쳐놓고 면장과 군수를 만나고 주민을 지도하는데서 오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고 홍병철 의원은 색다른 문제를 제기했고, 일부 의원들은 공화당의원이 장·차관에게 전화를 걸면 자리에 없다고 따돌리기 일쑤라고 털어놓고는 여당의원푸대접시정을 주장.
6일부터 3일간 계속된 유정회 의원「세미나」에서도 의원들은 정부측의「브리핑」을 듣고는 비판발언으로 시종.
특히 서석준 경제기획원 기획차관보가 4차 5개년 계획에 대한 개요를 설명하자 의원들은 앞다투어 질문.
안종렬 의원은『우리나라의 실업률조사는 무엇을 근거로 해서 작성하는 것이냐』『그 조사가 믿을만한 숫자냐』고 추궁했으며 이승윤의원은『차관에 대한 이자지불액 비중이 어느 정도냐』고 과도한 차관도입정책을 비판. 남상돈 의원은 고「토인비」교수의 말을 인용,『농촌의 근대화 없이는 우리나라 공업화가 불가능하다』며「무식한 각료」란 용어도 구사.
유신이념 교육문제를 다룬 8일의「세미나」에서 유기춘 문교부장관이『새 한국인상구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자 김충수 의원이『건국 후 5·16까지의 한국인상과 5·16부터 10월 유신까지의 한국인상 및 유신이후의 한국인상이 어떻게 다르냐』고 질문.
7명 의원의 연이은 질문공세에 대한 유 장관 답변이 길어지자 의석에선『답변을 간단히 하라』고 권고. 그러나 유 장관은『의원 여러분이 질문을 많이 하셨는데 답변이 어떻게 짧아질 수 있겠느냐』고 긴 답변을 계속.
여당의 직능단체대표 초청간담회는 자동차 노조·운수노조대표들에 이어 의사협회·간호협회 대표들과의 간담회를 마쳤고 △건설협회 △중소기업협동중앙회 △무협 △경제인 단체 △주한 미 상공회의소 대표들과의 간담회계획을 마련해 놓고 있다. 운수업계 노조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선 여차장의 인권문제가 주제로 등장.
노조대표들은『여차장들의 몸수색금지를 위해「버스」회수권사용을 실시토록 주장하지만 업주들이 회수권 발행비·판매비 등의 추가부담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고 실정을 토로. 그러면서도『서울시가 추진중인 남자차장으로의 교체도 막아달라』고 했다.
운수노조대표들은『3백50여개나 되는 각종 제재법규를 운전사들이 어떻게 외고 실현하겠느냐』고 과잉단속완화를 요구.
의사협회와 간호협회대표를 함께 초청한 간담회에서는 두 단체의 상반된 이해관계로 진정내용도 두 갈래.
간협 대표들은『간호보조원의 월급이 2만원에서 2만5천원에 불과한데 비해 의사는 그 10배 이상을 받고 있다. 미국에선 2.5배에 불과하다』고 간호원의 처우개선을 역설했으나 의사협회측은『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응수.
간협 대표들은『간호원도 간단한 치료행위를 허용해 달라』고 했으나 의협 대표들은『간호원은 보건관리·질병예방행위만 가능하다』고 맞섰다. 당정책위는 의협과 간협 대표들을 다시 따로 따로 초청키로 결정.
여당정책위는 간담회·대화·「세미나」에서 나온 문제점들을 문제별로 나누는 분류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과거 여당이 작성한 건의사항이나 시정촉구책은 보통 무임소장관을 통해 관계부처 장관에게 전달되고 담당국장-과장-계장-계원으로 하달되는 과정에서 흐지부지 끝나버렸던 예가 허다했으나 이번만은 청와대연석회의·국무회의 등에 올릴 계획.
그래서 시정할 것은 시정하겠다는 것. 간담회도 제도화해서 민의를 전달하는 도수관역을 맡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유정회의 경우 유신정치 등 8개 특별연구위와 △홍보 △총화특위 등이 현재까지 뚜렷한「테마」는 결정치 못했고 공화당의 안보·인구·경제 등 7개소위도 경제 제1소위가「기업공개에 따른 근본문제」를「테마」로 선정한 정도로 정책개발은 아직 시동 단계.
특히 공화당과 유정회의 소위는 명칭까지 중복되는 것이 많아 연구「테마」의 중복도 피해야할 형편.
소위활동을 뒷받침해야 할 재정적 지원도 전무할 뿐 아니라 자료수집을 위한 인력동원태세 마저 부족한「머리」만 많고 수족은 없는 상태여서 본격적 활동은 아직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고흥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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