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유럽풍의「두바이」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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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아라비아」반도의 동쪽에 자리 잡은 연합「아랍」토후국은 무지개의 일곱 빛깔처럼 일급 토후국들이「페르샤」만의 해안에 나란히 이어져서 이루어져 있는 오묘한 조화의 나라다.
특히 이 나라 해안선의 지역은「트루셜·코스트」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영어로『평화의 해안』이란 뜻이다.
19세기초에 각 토후는 영국의 동인도회사에 대항하기 위해 결속함으로써 「페르샤」만에서 해적행위를 하여 영국의 선박들을 계속 괴롭혔으나 동인도회사가 무력으로 이들을 강복시켰다.
1853년에는 항구평화조약이 체결되어 이 지역이「트루셜·코스트」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1892년부터 이웃나라「오만」토후국과 함께 영국의 보호국으로 있었다.
이런 역사는 이젠 한낱 부질없는 꿈처럼 되었으며「아라비아」에서 가장 가난하던 이 나라가 지금은 석유의 발견으로 부자가 되었다. 걸인이 왕자가 된 셈이라고나 할까. 석유가 펑펑 쏟아져 나오고 있어 이 나라 사람의 얼굴에는 삶의 기쁨으로 차 있는 듯했다.
석유의 수출대상 국은 일본(75%)·영국·미국이며 수입도 역시 일본이 수위이며 미국과 영국의 순서라고 한다.
「두바이」는 공중교통의 요지일 뿐 아니라 기름 값이 세계에서 가장 싼 곳이어서 여러 나라의 많은 항공기가 들르고 있으므로 국제공항과도 같다. 순전히 기름 때문에 이같이 번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해상교통인 선박을 위한 항만시설은 부족하다. 제방을 새로 쌓아 대형선박들이 머무르게 하긴 하지만 산호의 천해이고 보니 외항에서 기름을 공급받기 위해 많은 선박들이 닻을 내리고 있었다.
바다의 벽돌이라 할 산호초 돌을 잘라다가 지었던 옛날 집들은 헐리고 새로운「유럽」풍의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어서「아라비아」적인 예스러운 유풍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나그네에게는 아쉬웠다.
해풍을 받아들이는 원시적인 통풍장치가 있는 옛날 집들을 관광자원으로서도 일부는 남겨두는 것이 좋을법한데 깡그리 없애고 있었다. 순전히 외국의 기술로 말미암은 석유개발의 이윤으로 갑자기 물질적인 문명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 어딘가 정신적인 문화는 결핍되어 있어 보였다.
이 나라 젊은이들은 독일제의 고급「벤츠」차를 타고 바닷가에 와서는 영국제의 고급 엽총으로 해조를 쏘는 것을 보았다. 이 사막지대에서는 숲이 없어 아름다운 자연과 친숙할 수 없으니까 바다에서 이런 오락을 즐기는 듯했다.
이「두바이」시에는 서점이 거의 없으며 주간지 몇 권과 신문과「코란」을 한두 군데서 팔 뿐이다. 이 나라의 문화를 알고 싶어 전문서적을 구해 보았으나 없었다.
시내에서 떨어진 시골에 가니 옛날 흙담으로 지은 집이 있어 회고적인「무드」를 자아내지만 이런 오막살이집도 흙담을 뚫고 최고급인 미국「재너럴·일렉트릭」상표의「에어컨」을 달고 살고있는데는 적이 놀랐다.
기름이 나기 전 바로 4반세기전만 해도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을 참고 견디며 낙타를 몰고 다니던 이 유목민이 이젠 사막지대에서 더위를 잊고 사는 것이다.
이 나라 인구는 35만 가량인데 문명이나 문화의 바탕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아 자기나라 힘으로는 해결하지 못하고 건축기술자는 물론 이며 도로건설의 노무자까지도 외국에서 들여오고 있는데 노동력을 가장 많이 제공하는 나라는「파키스탄」이었다.
만일 우리나라의 건축 기술진이 이 나라에 온다면 얼마나 좋으랴 싶었다. 이 아담한 나라는 무한한 매력이 있어 온종일 쏘다니다보니 어느새「페르샤」만에서 사막 쪽으로 뉘엿뉘엿 해가 지고있었다. 시장도 하거니와 목이 타서 물을 얻어 마실 양으로 어떤 흙담집을 찾았더니 이 집 주부가 나를 보자마자 부리나케 안방으로 들어가더니「차도르」(얼굴을 가리는 천)를 뒤집어쓰고 나와서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목이 마르다는 시늉을 하며 물을 좀 얻을 수 있느냐고 했더니 이 주부는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며 큰그릇에 담뿍 담아서 주는 것이었다. 주인이 있으면 모르긴 해도 이 주부가 웬 낯선 사람이 왔다고 알릴 법도한데 아마도 없는 모양이었다. 이 나라도「이슬람」교를 믿기 때문에 자기 남편 이외의 남자에게는 얼굴을 보일 수 없어서「차도르」를 쓰고 대접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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