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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대 지원생의 입시부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19세기 영국의 석학 「존·스튜어트·밀」이 만일 그 아버지로부터 천재교육을 받지 않고 일반학교에 다녔더라도 과연 천재가 되었을까,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또 그와 반대로 만일 「마블로·카잘스」같은 「첼리스트」가 학교를 제대로 다녔더라면 더 한층 절묘한 신기를 발휘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도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특출한 재능을 구비한 사람이나 예술·체육 등 천부의 소질이 없이는 대성할 수 없는 분야와 관련해, 평준화된 교육이 좋으냐, 아니면 특수교육이 좋으냐 하는 질문은 많은 논란을 빚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점은 그러한 두 견해자체의 당부라기보다는 그것을 구체적인 현실문제에 어떻게 잘 융통성 있게 적용하느냐 하는 분별의 문제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경우, 가장 경계해야할 점은 어느 한가지 원칙만을 너무 고지식하게 획일화하려는 기계적 자세가 아닐 수 없다.
그 중에서도 교육의 평준화라는 관점에만 치중한 나머지 입학자격에까지 획일화를 강요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지나친 형식주의가 될 것이다.
최근 본지 문화면을 통해 찬반양론을 불러일으킨바 있는 음대지망생의 예비고사 시비도, 유망한 학생들의 음악적 소질이 제도적인 획일주의나 형식주의로 인해 둔화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견지에선 경청할만한 의견들이라 할 것이다.
그런 견지에서 고찰한다면 음대 지망생에 대해서는 입학자격에 있어서나 교육과정에 있어 다른 학문분야나 교육분야와의 획일성을 떠나, 보다 융통성 있고 전문화된 특수기준을 설정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예술이란 수학이나 과학 등 실증적인 학문과는 달리, 기본적으로 「천부의 자질」을 타고난 개인의 주관적인 상상력이나 창조력, 또는 「인스피레이션」에 관련되는 바가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로 대성시킨다는 것도 바로 그러한 내적 역성을 극대화시켜주는 과정이지, 텅빈 의식의 백지에 평균적인 지식의 백과를 주입해 넣는 교육방식과는 구별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또 「테크닉」의 면에서만 보더라도 한 사람의 「바이얼리니스트」나 「피아니스트」가 되기까지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심 참담한 수련과정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특수성을 감안할 때 음악가 지망생들에게 일반교육과정 과목 같은 평준화된 시험제도만을 기계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은 오히려 발전의 장애요인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지 않아도 현재와 같은 입시제도나 예시제도는 음악·체육·미술 등 특수 기능분야를 지망하는 수험생들에게 필요 이상의 과중한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는 평을 듣던 참이었다. 뿐만 아니라 현재와 같은 제도가 지속되는 한 한국의 교육은 음악이나 체육을 막론하고 평범한 「아마추어」양산을 면할 길이 없으리란 점도 자주 지적되어 왔다.
때문에 탁월한 감성적 자질을 타고난 비평균인이나 유망한 기능인들을 일반적인 틀 속에 묶어둘 필요는 없으리라 본다.
오히려 「아마추어」양산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면 입시제도의 완화는 물론 음대나 체육대를 굳이 일반대학의 테두리 속에 묶는 것보다는 독립된 특수교육기관으로 분립시키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 점은 선진국의 유수한 음악대학들의 경우를 보면 능히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서울대가 내년부터 예·체능계 지원자에게 예시성적과 실기시험만을 요구하리란 것도 일단은 그런 방향을 염두에 둔 하나의 조그만 전진으로 보고 싶다.
많지도 않은 음악인 지망생들에게 최선의 교육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보다 활발한 논의가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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