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개발지의 면세라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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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몇 가지 규정과 절차만 바꾸면 언제든지 세금을 매겼다 벗겼다할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은 온당치 않다. 영동지구를 대규모 주택지로 개발하는 사업이 결코 수월하거나 만만한 일이 아닌 것은 충분히 짐작된다. 그리고 사소한 시행착오도 없어야 한다는 얘기는 더욱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수도행정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시민생활에 보편적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원칙만은 지켜야 할 것이 아닌가.
영동지구 개발을 둘러싼 일련의 서울시 행정은 개별적으로 볼 때, 모두가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우선 초기단계에서 대규모로 주택지를 개발하려면 당연히 면세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논리도 일견 그럴듯하다. 마찬가지로 면세해도 집이 들어서지 않으니 면세범위를 줄이거나 아예 철폐하자는 주장도 전적으로 이치에 어긋나진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식의 논리변화가 엄정하게 얘기해서 참된 시민행정을 위한 것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영동개발 초기만 해도 강북인구 분산이나 외곽도시 개발이 한창 강조되던 때였으므로 면세조치가 당연한 것처럼 주장되었다. 면세만 해주면 금방이라도 집이 들어찰 것처럼 과장된 기대를 부풀게 했었다.
개발이후의 과열투기나 이에 따른 지가폭등이 뻔히 내다보이는데도 시 당국은 시치미를 떼고 택지 매각에만 열을 올렸다.
과연 예상했던 대로 땅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그리고 재산가들은 이 땅을 사고 파는 동안 면세의 혜택을 만끽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떤가.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서민들이 이곳에 집을 지었는가. 전체면적의 30%도 못되는 주택건설 실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개발촉진지구의 땅값이 다른 택지보다 더 비싸게 된 결과는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지 모두가 궁금할 뿐이다.
결국 서울시는 면세를 내걸어 개발택지를 성공적으로 처분함으로써 재정수입을 늘릴 수 있었고, 투기가들은 적지 않은 재미를 보았겠지만, 당초에 내걸었던 서민주택난 해결에는 별다른 기여를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이런 결과는 면세 때문에 빚어진 것이 아니라 시 당국의 무책임에서 비롯된 것이라 추궁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매각에만 쏟았던 관계자들의 관심을 조금만이라도 그 뒤의 문제, 과열투기 억제나 땅값 안정에 쏟았더라도 이처럼 엄청나게 비싸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동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서울시가 장사 속에만 치중하는 타성을 탈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기왕 면세제도가 서민주택 건설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지금이라도 철폐되거나 범위를 줄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이 경우에도 일거에 없애는 것보다는 시한을 두고 단계적으로 줄이는 현재의 방식이 더욱 합리적이다. 다만 소형「아파트」를 비롯한 서민주택 건설에 대해서는 기존혜택 뿐만 아니라 다른 가능한 유인을 오히려 더 늘려 실질적인 지원이 되도록 연구해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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