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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 통화' 에르도안, 지방선거 압승 … "대가 치를 것" 터키 야권에 보복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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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치러진 터키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운데)가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그는 8월 대선에 출마할 전망이다. [이스탄불 로이터=뉴스1]

부정부패와 언론 통제로 궁지에 몰렸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터키 국영방송 TRT에 따르면 에르도안 총리의 정의개발당(AKP)은 개표가 98%가량 이뤄진 상황에서 45.6%를 득표했다. 갖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2009년 지방선거 득표율인 39%를 웃돌았다. 제1 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은 27.9%를 득표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이날 밤 앙카라의 당사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의미 있는 선거 결과에 대해 신에게 감사한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이어 “오늘 7700만 국민은 새로운 터키를 맞이했다”며 “서방이 열망하는 민주주의를 우리가 갖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와 함께 치열한 권력 다툼을 벌인 반대 세력을 향해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보복을 천명했다. “내일이면 도망칠 이들을 동굴 속까지 쫓아가겠다”고도 했다. 특히 정적이자 이슬람 지도자인 페툴라 귤렌을 겨냥해 “정부 안의 또 다른 정부를 뿌리 뽑아버리겠다”고 했다. 귤렌의 지지 세력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터키 검경이 에르도안 총리와 측근을 상대로 1년 이상 통화를 감청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에르도안 총리는 지난달 아들과 통화한 내용이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면서 최악의 부패 스캔들에 휘말렸다. 기업으로부터 거액을 수뢰하고 10억 달러(약 1조원)에 이르는 재산을 은닉한 사실이 드러났다. 전화 감청이 선거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트위터와 유튜브 접속도 차단해 비난을 받았다.

 이 때문에 이번 선거는 에르도안 총리에 대한 신임 투표, 정권에 대한 심판의 성격을 띠었다. 에르도안 총리도 패배 땐 정계를 은퇴한다고 배수진을 쳤다. 야당은 독재와 부패 심판론을 펼쳤지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자멸했다. 오히려 야당의 공세는 에르도안 총리의 보수 이슬람 지지층을 결속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그 결과 에르도안 총리는 강력한 정치적 동력을 얻게 됐다.

 터키 정가에선 그가 8월에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터키는 2012년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했다. 총리직을 3번 연임한 에르도안 총리가 승리를 발판 삼아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고 그 자리에 오를 것이란 예측이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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