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한 정감의 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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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류시조시인으로 한국문단에서 청초한 작품의 경지를 지켜왔던 정예 이영도여사(61)가 6일 홀연히 타계했다.
1946년 대구에서「죽순」동인으로 시작을 시작, 시조『제야』를 발표함으르씨 정식등단한 이여사는 50년대이후부터 차차 주목을 끌었던 원로급시조시인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작품 전편에 흐르는 여류특유의 다사한 정감, 인생을 조용한 눈으로 관조하는 태도등은 비평가들의 관심을 모았던 그의 독특한 문학세계였다. 그러나 그보다도 민족정서를 바탕으로 잊혀져 가고있는 한국고유의 시적가락을 대표작 『아지랑이』(1966년) 『달무리』(71년)등을 통해 재구현하고자 한 그의 노력은 여류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높게 평가되었었다.
부군의 사망으로 외딸 박진아(39)씨와 단둘만의 조용한 생활을 평생 계속해온 이여사는 늘 검정이나 감청·회색 계통의 한복만을 차려입고 땋아 쪽찐머리를 하고다니는 모습으로도 유명했다.
이여사는 「죽순」동인으로 시작을 시작하기 전해인 45년부터는 통영여고의 교사로 부임,부산남성여고·부산여대등에서 63년까지 교정생활도 해왔었다. 64년에는 부산어린이회관관장직을 역임했고 66년에는 제8회 눌원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향은 경북청도군청도면내호동. 통영여고 재직시부터 고유치환시인과의「플라토닉·로망스」는 유명했었다.
대표작은 2수로된 「황혼에 서서』(58년), 단수로된 『아지랑이』(66년), 한국의 어머니상을 읊조린 『달무리』(71년) 등.
저서로는 시조집『육저집』(54년), 『석류』(68년)가 있고 수필집『청근집』(58년), 『비둘기 내리는 뜨락』(69년), 『머나먼 사념의 길목』(71년)이 있다.

<작품 (삼)
네살짜리 손주놈은
생선뼈를 창살이라 한다
장지엔 여릿한 햇살
접시엔 앙상한 창살
내눈은 남해 검붉은 녹물
「미나마다」에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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