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타인을 업신여기면 내 삶의 결핍 채워지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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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모멸감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문학과지성사, 324쪽
1만3500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사람의 행동 예측의 어려움을 가리키는 말이다. 감정 때문이다. 내 마음, 나도 모르는 판에 남의 마음, 감정이 들여다 보일 리 없다. 돈·스마트폰 등 생활세계를 사회학으로 분석해 온 저자는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에 대해 낯선 도시에 대해서만큼이나 모른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렇다고 감정이 해독 불가능한 난수표인 것은 아니다. 비합리적 충동으로 가득 차 있지만 일정한 패턴이 있다. 냉철한 계산보다 탐욕·선망 등을 따르는 인간 특성에 주목하는 ‘행동경제학’은 그래서 가능한 학문이다.

 저자는 한국사회를 읽는 키워드로 감정, 그 중에서도 모멸감을 택했다. 인문학자 김우창 교수가 한국사회를 ‘오만과 모멸의 구조’로 분석한 데서 영감을 얻었다.

 모멸감은 어떤 감정인가. 수치심이나 모욕감과는 어떻게 다른가. 수치심이 본인의 과실에 대한 비판을 인정하는 상태에서 느끼는 부끄러움이라면 모욕감은 부당한 처우로 인해 분노·원한 등을 갖게 되는 감정이다. 모멸에는 모욕 이외에 경멸의 의미도 섞여 있다. 때문에 최악의 감정적 폭발을 가져올 수 있다.

 저자는 모멸의 구조를 밝혀내기 위해 인문학·심리학 서적은 물론 신문기사, TV드라마·영화의 대사, 문학작품, 일상 사례 등을 광범위하게 조사한다. 요는 압축성장, 그에 따른 공동체 상실을 마주한 한국사회가 새로운 공동체적 가치, 합리적 개인주의 등을 마련하지 못하다 보니 모멸감에 취약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주장이다. 그 결과 타인에 대한 모멸을 통해 자기 삶의 결핍·공허를 채우려 하고, 모멸은 새로운 모멸을 낳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진단이다.

 책은 진단에서 그치지 않는다. 뻔한 도덕적 결론이라는 느낌도 들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그중에는 불교색 짙은 해결책도 있다. 스스로 감정변화를 관찰하는 훈련을 하라는 것이다. 작곡가 유주환씨가 책의 원고에서 착안해 작곡한 연주곡 10개를 함께 판매하는 CD, 책 속 QR코드 검색을 통해 즐길 수 있다. 이래저래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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