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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방불케 한 보안 작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한계를 지키는 함구>
후보자 73명과 예비 후보 5명 등 78명의 명단이 발표되기까지 청와대 실무자들은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보안 작전을 폈다.
청와대 실무자들은 12일 밤에야 겨우 보도에 따른 대책 회의를 열고 후보자 명단 발표 시간을 14일 상오 9시30분으로 결정, 13일 상오 보도진에 이를 통고했다.
그러나 14일 상오 10시에 등록한다는 사실만 알려주었을 뿐 「새 추천자 수」나 「탈락자」 등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
『이렇게 몰라서야 취재 기자로 면목이 없어 사표를 낼 수밖에 없다』는 반 협박을 받은 한 고위층은 『「파트별로 분담, 내가 맡은 것을 발표하는 것 뿐』이라고 했다.
명단이 발표된 후 청와대의 한 정통한 소식통은 『새 추천자 23명은 청와대 비서실장이 직접 12일과 13일 새벽까지 통고, 승낙서와 사진, 그리고 이력서 등을 후보자들로부터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13일 하오 5시쯤 정일권 국회의장이 청와대를 방문하자 후보 사전 통보가 아니겠느냐고 한 때 긴장했으나 『중동 방문 결과보고 같다』는 관측으로 일단락.

<금요일 13일의 최후 만찬>
유정회 제2기 후보 추천 과정에서 탈락된 김진만 부의장과 김봉환 보사 위원장은 자신들의 탈락 사실이 대의원들에게 전달되는 바로 그 시간 백두진 유정회장이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위해 베푼 만찬에 참석. 이날은 공교롭게도 서양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13일의 금요일. 그 자리에서는 몰랐지만 두 의원은 유정회 의원으로서는 마지막인 「최후의 만찬」이 됐다.
미리 마련하려다가 김 전 총리의 사정으로 이날 갖게된 P「호텔」만찬에는 백 회장·김진만 부의장·구태회 정책위 부의장·이영근 총무·민병권 무임소장관·김세련·최영희·현오봉·김봉환 위원장·권효섭 행정 실장 등 11「커플」이 참석 예정이었으나 이 총무는 부인만을 보내고 불참.
이 시각에 이 총무는 모처에 들어가 유정회 의원 재 추천자 명부를 통고 받고 있었던 것.
만찬에서는 김 전 총리가 부산에서 소일하던 얘기와 건강 문제 등이 화제로 올랐다.
김 전 총리는 『일본의 명치 유신 시절 국회 속기록을 보니 의원 개개인의 거동이 일일이 수록돼 있더라』며 속기록 얘기도 꺼냈고 만찬이 끝난 뒤 기자들이 추천 통고를 받았느냐고 묻자 『그 문제는 공화당과 유정회 영역 밖의 일이 아니냐』고 받았다.
8시 반쯤 돼서 밖에 나온 김 부의장은 기자들에게 『무슨 소식 좀 듣지 못했느냐』고 묻고는 『빨리 발표를 해야지…』라면서 차에 올랐고 김봉환 의원은 『시골에 갔더니 오늘 중으로 대의원들은 12시 이후에 명단을 받아보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더라』며 귀가했다.

<집안불도 끄고 문전 냉대>
만찬에 참석치 않고 모처를 다녀 나온 이영근 총무는 백두진 회장 댁으로 갔으나 보도진들이 진을 치고 있자 곧장 한강변의 자택 「아파트」로 직행.
그의 집에도 보도진들이 몰려있는 낌새를 알아차린 이 총무는 시내 어느「호텔」로 빠져나가, 간부들에게 1차로 전화 통고.
이 총무는 권효섭 행정 실장과 지종걸 정책 연구실 차장에게 『재 추천 됐다』는 짤막한 통고와 함께 『내일 아침 공식 발표 때까지 발설하지 말아달라』고 주의를 환기.
이날 저녁 이 총무 집에서는 10시부터 아예 방 불을 모두 끄고 찾아간 보도진에게 빨리 나가 달라고 문전 냉대하면서 보안에 신경을 썼다.
대부분의 유정회 소속 의원들은 14일 상오 6시 반쯤에야 이 총무로부터 통고를 받았는데 일부 의원들은 국민회의 대의원들로부터 미리 연락을 받고 『원내 총무가 필요 이상으로 애를 태우게 했다』고.

<그게 무슨 말이지요>
신참 후보들은 재 추천된 유정회 의원 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유정회 의원은 한목에 도장·사진을 총무에 맡겼으나 바깥 사람은 개별적으로 도장·사진을 가져갔기 때문. 그러나 이들은 14일 새벽까지도 함구령을 지키려는 듯 보도진의 문의에 『사실이냐』고 오히려 탐색전.
육군 중장 출신인 최우근씨는 『나는 아직 통고를 안 받았다』고 했고 또 다른 후보는『추천된 것이 사실이냐』고 반문.
후보들은 대부분 부인에게까지 입을 다물어 14일 새벽 2시쯤 축하 전화를 받은 김도창씨 부인은 깜짝 놀라며 『사실이냐』고 물었고 이종찬씨 부인도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한동안 어리둥절.
김씨는 집안에 유정회에 관해서는 아무 얘기도 않고 변호사 일로 13일 지방에 내려가 있었다고.
이정식 백영훈 권중동씨 등은 완강히 부인하지는 않았으나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며 공식 발표만을 기다렸다.

<그럴싸한 후보 오르내려>
유정회 2기 후보의 명단이 13일 밤 국민회의 대의원들에게 전달될 때까지 「극비」에 붙여졌으나 정가에선 그럴싸한 후보 이름들이 오르내렸다.
모 은행장은 얼마전 「허바허바」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은 것이 알려져 유정회 추천 서류용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에서 유정회 후보로 소문이 났고 L대사는 사임 시기가 유정회 인선과 같아 역시 유정회 진출을 위한 사임으로 소문이 퍼졌다.
야당 가에까지 권중돈 전신민당 전당 대회 의장이 유정회 후보에 추천되는 양 한 때 확인소동이 벌어졌는데 명단이 나온 후에야 노조 간부인 권중동씨와 혼동된 것이 판명됐다.
영남 화학 사장인 김성룡씨는 한글 동명인 김성용씨 때문에 사전에 많은 인사를 받았다.
이밖에 금융계의 K씨, 법조의 O씨. 공무원 P씨, 8대 의원 L씨 등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었으나 결국 「루머」로 끝났다.
공화당에서는 일부 간부들의 추천이 확실하다는 얘기를 듣고 화제가 된 8대 동료 의원을 찾아 축하를 해주었다 불발로 끝나 어색해진 일도 있다.

<문공위에 탈락 제일 많아>
탈락된 유정회 의원의 상임위별 분포는 6명 중 이숙종 의원만 남은 문공위가 단연「톱」.
이와는 대조적으로 6명의 외무위원들이 고스란히 유임되어 외무위는 유정회의 「안전 지대」가 됐다.
탈락 의원의 비율이 두번째로 높은 보사위는 김봉환 위원장을 포함해서 3명이 물러간 반면 2명이 유임되고 △법사는 2명 △내무 1명 △재무 2명 △경과 2명 △국방 1명 △농수산 3명 △상공 2명 △교체·건설 각 1명이 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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