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째 수난 겪는 화「오린지」 왕가|「베른하르트」공 「록히드」 추문 관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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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율리아나」「네덜란드」 여왕의 부군「베른하르트」공이 미국 「록히드」 항공사로부터 1백10만 「달러」를 수회 했다는 보도들은 여왕이 1948년 즉위한 이후 「오린지」왕가가 네번째 겪는 주요한 수난이다.
「율리아나」 여왕이 겪은 첫번째 수난은 여왕이 시력이 맹인에 가까운 막내딸의 눈치료를 위해 신앙 요법사인 「그리트·호프만」 여인을 궁정에 출입시켰을 때 일어났다.
이때 「호프만」 여인은 곧 여왕의 신임을 얻어 국정에까지 참견함으로써 이에 반대한「베른하르트」공은 여왕과 별거까지 했으며 이혼설을 불러오기도 했으나 56년 여왕과 부군의 화해로 위기는 모면될 수 있었다.
「율리아나」 왕의 두 번째 수난은 64년 둘째딸 「이레네」 공주가 「스페인」「부르봉」 왕가의 왕위 계승권자인 「유고·카를로스」공과 결혼하기 위해 「가톨릭」 교도로 개종함으로써 개신교도들은 「네덜란드」 국민의 항의를 불러일으킨 일이었다.
「율리아나」 여왕의 세번째 수난은 왕위 계승 순위 1위인 「베아트릭스」 공주가 66년 서독 외교관 「클라우스·폰·암스베르크」씨와 결혼했을 때 일어났다.
2차 대전 때 「나치」의 압제에 고통 받아온 「네덜란드」 국민들은 공주의 부마가 10대 때 「나치」 청년 단원이었으며 전시 노동 수용소 관리를 지냈다는 과거를 들춰내서 결혼식이 올려지고 있는 교회에 연막탄을 터뜨리며 「데모」를 벌였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감은 다음해 「베아트릭스」 공주가 「오린지」 왕가로서는 1884년이후 처음으로 왕위 계승권을 가진 아들을 출산하게 되자 사라졌던 것이다.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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