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찾은 교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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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구정을 전후해 다시 3천여명의 조총련계 재일동포가 고국을 찾아 왔다가 무사히 돌아갔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들이 둘러 본 고향 땅은 눈에 익은 듯 하면서도 무척 새로 왔던 모양이다.
서울시가지도, 고속도로도, 공업단지도, 고향의 모습도 조총련의 허위선전과는 너무도 달랐던 것 같다.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준 조국과 동포의 환영의 손길에서도 그들은 착잡한 감회가 없을 수 없었으리라.
우리는 결코 오늘날의 조국이 밝고 좋은 면만 있다고는 얘기하지 않겠다. 재일동포들이 살고 있는 일본에 비해서는 살기에 불편한 점이나 낙후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오늘의 우리 국민들이 노력하면 잘 살수 있다는 의욕을 갖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만은 자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0, 40년만에 고향 땅을 찾은. 동포들도 고국의 구석구석에서 이러한 열의와 노력을 느꼈을 것이다. 적어도 조총련의 선전과는 너무나 다른 조국을 보았을 것이다. 『옛날 생각만하고 선물로 귤을 가져왔다가 하도 귤이 흔해 부끄럽기만 했다』던 한 동포의 꾸밈없는 얘기에서 이들의 느낌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오랜만에 본 조국에 대한 인상이 모두에게 똑 같을 리는 없을 것이다. 개중에는 아직 반신반의 미망에서 덜 깬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판단은 자유다. 다만 우리로선 이들도 본 것을 본대로 조국에 못온 동포들에게 전해달라는 것뿐이다. 적어도 조국 땅을 오가는덴 아무제약이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전해주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아직 고국을 찾지 못한 동포들에게 스스로 와보고 끊어졌던 혈육의 정을 잇고 자기 나름의 판단을 할 수 있는 기회만은 잃지 않도록 해야겠다. 이것만은 조국을 다녀간 재일동포들이 져야할 민족에 대한 빚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혈육의 정을 찾는데 용감했던 고국방문 동포들은 이 일도 용기 있게 해주리라 믿는다.
고향을 찾은 조총련계동포들은 한결 같이 앞으로는 자주 고향 땅을 찾으리라 다짐했다. 5일의 서울시민 환영대회에서는 봄에 다시 돌아와 고향에 나무 한 그루씩을 심어 제2의 탄생을 기념하겠다고도 했다. 이제 이들은 실향민이 아니라 떳떳한 고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30년 막혔던 고향길이 트였으니 자주 고향을 찾아주기 바란다. 조국의 동포들도 재일동포들의 고향나들이를 계속 성원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선 일본 등 자유세계에 사는 동포들만이라도 모두 이산의 한을 씻도록 해야겠다. 그래도 일본에 사는 동포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스스로 용기만 있으면 방해와 압력을 물리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가슴 아프게도 북녘공산세계에 사는 동포들은 헤어진 가족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가 없다.
7·4남북성명이 후 한때 부풀었던 이산가족 재회의 꿈은 북적측의 무성의로 무산되고 말았다. 북한적십자사는 이산가족의 재회를 위한 우리측의 현실적 제안을 이른바 「조건환경론」이란 선행 조건을 내세워 전면거부하고 있다. 북적의 조건환경론이란 남한에서 공산주의를 합법화하여 간첩활동 및 공산당의 조직과 선진을 허용하고 감군을 단행하라는 것이다.
이런 정치·군사문제를 인도적 이산가족문제 해결의 선행조건으로 내세운다는 것은 그들의 이산가족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들이 진정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성의가 있다면 어찌 조건·환경이 넘을 수 없는 장애일 수 있겠는가 조총련계 재일동포의 모국방문이 바로 그 뚜렷한 증거가 아닌가. 조건·환경이 바뀌지 않았어도 5천명 가까운 동포가 자유롭게 고국을 찾아 가족들을 만나고 돌아가지 않았는가.
혈육이 만나는 것을 막는 행위는 인륜을 거슬리는 행동이다. 순리에 역행하는 책동은 결국 실패하고 만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남북한 관계에서도 혈육의 만남이란 순리는 결국 이루어지고 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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