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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공인인증 개혁, 불편 해소보다 근본적 구조개혁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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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규제개혁 끝장토론 일주일 만에 현장에서 제시된 규제 해소 방안을 내놓았다. 이 중 일명 ‘천송이 코트 규제’로 관심을 모은 전자금융거래의 공인인증 규제도 손질하기로 했다. 그러나 방안이 발표되자 관련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온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가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제시한 방안은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현재 공인인증 시 설치해야 하는 액티브X를 대체할 공인인증을 개발하고, 인터넷 쇼핑에서 30만원 이상 결제 시 공인인증이 의무화돼 있던 금액규정을 풀겠다는 것. 또 해외 소비자 전용 쇼핑몰을 구축한다는 것 등이다. 즉 정부의 규제개혁 방향은 소비자들의 결제 편의성을 높이는 방안 마련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국내 공인인증제의 진짜 문제는 ‘규제 내용’보다 ‘규제의 구조’ 자체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즉 관(官)이 직접 기술개발에 개입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해 다른 기술이 진입할 수 없도록 진입장벽을 쳐놓아 기술 자체를 독점했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보안이 취약했던 1990년대 초반에나 유용했던 액티브X가 지금까지 존치됐고, 이런 획일화된 보안 기술로 인해 악성코드가 손쉽게 침입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줬던 것으로 지적된다. 또 공인인증 시장은 금융권 등이 출자한 일부 업체가 독과점으로 운영하며 규제자와 사업자가 공생하면서 소비자 보호는 취약하고 전자금융거래 시스템은 갈라파고스화됐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10여 년 전부터 국내 공인인증의 위험성을 경고했던 김기창 고려대 교수는 “공인인증 논란은 기술이 아닌 경쟁의 문제”라며 “당국은 기술에 개입하지 말고 높은 수준의 소비자 보호 정책을 추진하고, 민간 보안업체들이 기술개발 경쟁을 하도록 해 기술수준을 끌어올리면 안정성 높은 기술개발도 가능하고 이들이 세계 보안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적 개혁 없이 눈에 보이는 불편만 제거한 것으로 규제를 개혁했다고 할 수 없다. 당국은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치밀하고 구조적인 규제개혁에 나서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