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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증여세 완전 포괄주의 2004년 시행하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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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납세자는 정당한 세금 이상을 내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정한 '납세자의 권리와 의무'보고서는 이같이 '절세(節稅)의 권리'를 적고 있다. 내야 할 세금은 내되 법에 없는 세금까지 낼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새 정부의 12대 정책과제 중 하나로 추진 중인 상속.증여세의 완전 포괄주의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의 기본 원칙과 공평성을 강조한다. 일일이 과세 유형을 지정하지 않아도 사후 상속과 생전 증여를 통해 사실상 이익이 이전된다면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포괄주의 단계적으로 확대=지금까지 상속.증여세는 세법에 정한 유형에 대해서만 세금을 매겼다. 그런데 앞으론 어떤 식으로든 이익을 보았다면 모든 상속.증여 행위에 과세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유형별 포괄주의로는 일일이 정한 유형에 대해서만 세금을 매길 수 있다. 따라서 날로 새롭고 다양해지는 상속.증여 행위에 대해서는 과세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전환사채(CB)와 같은 파생금융상품과 비상장주식의 양도를 통한 새로운 증여 행태가 나타났지만 열거한 과세 유형에 없다는 이유로 증여세를 매기지 못할 것이다.

이런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는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전환사채.상장시세차익 등 6개 유형의 증여 행위에 대해 포괄주의를 적용했다. 이들 항목에 대해선 유사한 행위에 대해서도 세금을 물린 것이다.이같은 유형별 포괄주의는 올해부터 세무당국이 파악한 14개 증여의제 행위로 확대 적용된다.

"완전 포괄주의를 도입하더라도 세수 증대 효과는 크지 않지만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므로 도입해야 마땅하다."(원윤희 서울시립대 세무대학원 교수)

상속세는 2001년에 1천9백82명이 4천11억원을, 증여세는 4만9천6백45명이 6천5백41억원을 냈다. 완전 포괄주의를 도입할 경우 늘어날 세금은 1천억~2천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는 "완전 포괄주의 도입은 세수 증대 효과보다 새 정부의 개혁과제 중 하나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제도를 보완해왔지만 절세 기법이 앞서가는 바람에 유형별 포괄주의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

시민단체들도 동조하고 있다. 참여연대 최영태 조세개혁팀장은 "완전 포괄주의는 허점을 보완해 상속.증여 세제를 정상화하고 공평 과세를 실현하는 것이므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긴장하는 기업과 고소득층=재계와 고소득층은 상속.증여세의 완전 포괄주의 도입 움직임을 부담스러워한다. 공평 과세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 대상이 납세자의 0.1%로 결국 핵심 타깃은 재벌과 소수의 고소득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재계는 완전 포괄주의가 기업경영의 핵심인 투자에 적지 않은 제약을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 경영은 오너의 지분과 결부돼 있어 투자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오너의 지분이 움직인다"며 "포괄적으로 증여의제를 적용하면 오너와 특수관계인이 과중한 세금을 우려해 기업 생존에 필요한 투자까지 꺼림으로써 기업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명근 강남대 교수는 "선진국에선 금융실명제.정치자금법.자금세탁방지법 등 과세 인프라가 잘 정비돼 있기 때문에 완전 포괄주의가 가능하다"며 "제도를 정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완전 포괄주의의 도입을 서두를 경우 기업 경영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투자 활동은 자본 조달이나 경쟁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이 필수적이라서 보안이 요구된다. 그런데 완전 포괄주의가 도입되면 모든 투자활동에 자본 투자의 효율성을 따져야 하는 기업으로선 세무당국에 일일이 납부세액을 미리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증여 자산에 대한 가치 평가를 둘러싸고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도 기업에겐 부담이다.

◆실효성과 객관성 확보가 관건=새 정부의 의지가 강한 만큼 완전 포괄주의는 올해 안에 입법 과정을 거쳐 내년부터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최명근 교수는 "세금 없는 증여를 차단함과 동시에 기업의 경영활동에도 부담을 주지 않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선진국처럼 구체적인 사례와 통례를 만들어 예측성을 높이고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완전 포괄주의를 도입하더라도 과세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함으로써 OECD 보고서처럼 정당하게 절세하는 부분에 대해선 납세자의 이익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증여에 대해 과세한다는 완전 포괄주의의 추상적 과세 요건이 현실에 맞게 운용되지 않으면 조세마찰과 세무행정상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 즉 '사실상 이익의 증여'에 대해 세금을 매기므로 과세 요건이 명확하지 않으면 세금 부과 과정에서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사실상 이익의 증여와 절세 노력으로 얻어진 이익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쉽지 않다. 납세자가 절세할 수 있는 권리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조세연구원 한상국 연구위원)

정부도 완전 포괄주의를 도입하되 구체적인 과세 유형을 하위(下位)규정에 열거하는 등 보완 장치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재정경제부 김문수 재산세과장은 "완전 포괄주의 적용 방식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며 "구체적인 형식과 요건은 충분히 검토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김동호 경제연구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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