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소감|참으로 미쳐야 할 일 알려준 소식|기쁨도 잠깐… 무거운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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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당 선생님을 모시고 밤새 마신 술이 아직 덜 깬 머리 속을 정돈하느라고 기를 쓰고 있는데 아들을 낳고 사흘째 누워있는 아내가 전화로 「소식」을 알려줬다.
동료들이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준다.
『공부를 영 집어치울 거냐』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별반 준비도 없이 마감 이틀을 앞둬서야 써 내려갔다. 평소에 줄곧 생각해 온 문제를 다루긴 했으나「당선」까지 갈 줄은 기대를 않았었다. 칠순 가까운 어머님도 대견스러운 표정이셨다. 거들어 주는 이 없이 30년을 키운 아들이 처음으로 효도를 한 셈이다.
이제껏 미쳐서 놀아난 세월이었다. 「프란시스코」에 미치고, 「스피노자」에 미치고 원효, 미당의 시, 연애 시절의 아내, 양희은 양의 노래… 이 모든 것에 미쳐 있었다.
이 「소식」은 지금부터 내가 참으로 미쳐야 할 무엇을 가르쳐주는 계시일 것 같다.
결함 투성이의 원고를 뽑아주신 선생님께는 고맙고 송구스럽다. 기쁨이 가라앉은 다음 마음이 참 무겁다.

<약력>
▲1945년 제주 출생 ▲제주 오현고 졸업 ▲가톨릭 신대 중퇴 ▲제주 신문기자(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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