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이근량 통신원 한국인 운전수송대 동승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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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나흘동안 1천8백㎞를 달리면서 만난 수십명의 우리 운전사들 중에서 우연하게 두 가지의 공통점을 찾아냈다.
하나는 누구나 「선글라스」를 썼다는 사실이며 또 하나는 약속이나 한듯이 일제 「세이코」시계를 차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계 팔면 남는다" 헛소문>
「선글라스」는 사막을 달리는 동안 필수품이기 때문에 서울에서 휴대해야 한다는 것이나 팔목의 시계는 「세이코」 시계를 가져가면 웃돈을 받을 수 있다는 헛소문 때문에 누구나 차게 되었다는 웃지 못할 사연을 지니고 있다.
사막의 어둠은 하오5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숨쉴 겨를조차 없이 갈 길을 재촉해야 했다. 운전사들은 계약상에는 휴일인 매주 금요일 이외에 국경일에도 쉬도록 되어있으나 고용주가 인정하는 날이라는 단서 때문에 운전사의 피로는 날이 갈수록 더해간다는 이야기다.
중남부 교통의 「센터」인 「시르잔」에서 「호세인나바드」라는 간판이 걸린 양고기 집을 사흘째 숙소로 정했다. 빈차로 또는 짐을 가득히 싣고 가다가 이곳에 자리잡은 운전사가 또다시 20여명―.
저녁을 마치고는 양고기 집에서 「차이」를 들자니까 우리 운전사들이 빠짐없이 모여들어 서울 소식이나 듣자고 졸」댄다. 「차이」는 「이란」특유의 홍차다.
「실크·로」를 따라 중국상인이 전해준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란」은 「차이」를 더욱 중요시하고 있다. 「차이」를 마시는 동안 고국 이야기에서부터 사막이야기까지 온갖 대화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줄을 이었다.
자정이 갓 지나 자동차를 한바퀴 돌아보니 운전석마다 각양각색이다.
담요 이불을 휘감고 「슬리핑·백」 속에 들어가 추위를 달래기 위해 「보드카」를 마시는 사람, 다 찢어진 잡지를 들추는 운전사 등 「트럭」마다 천태만상을 이루면서 사막의 밤은 깊어만 간다.
「반다르아바」를 눈앞에 두고 있는 날. 4진으로 도착한 뒤 처음으로 「핸들」을 잡은 송양섭씨(30)의 운전석에는 태극기마저 휘날리며 우리 「트럭」을 뒤쫓고 있어 쭉 뻗은 도로가 경쾌하기만 하다.
남쪽으로 갈수록 주민들의 얼굴은 더욱 검고 토담집도 그 규모가 점점 작아진다. 길가에는 충돌사고로 나자빠진 자동차의 잔해가 이따금 시야에 들어온다.
「시르잔」을 벗어나 1시간쯤―. 우리는 「이란」의 부에 경탄하면서 질주해야만 했다. 여지껏 누렇던 천지는 갑자기 하얗게 변하면서 소금 산과 소금 대평원사이로 외길로 된 「아스팔트」도로가 비집고 뚫려 있음을 본다. 해발 3천m이상의 첩첩 산맥이 모두 소금산. 그 사이 사이로 끝없이 널려있는 들판이 그대로 소금바다를 이루고 있다.

<교량 아래선 여인의 유혹>
석유 다음에는 동광, 동광 다음에는 소금이라는 말을 실감하며 「이란」의 사막을 「다시트·에·카비르」(소금사막)라 이름하는 것도 비로소 그 이유를 알수가 있다.
「알리아바」에서 2㎞쯤― 허허벌판의 「아스팔트」길에 불과하지만 우리 운전사들에게는 한이 맺힌 장소로 통하는 곳이다. 다달이 4백「달러」를 송금하겠다고 부푼 가슴을 안고 사막을 달리던 권한석씨(37)가 지난 11월7일 사고로 숨진 비애가 뿌려진 길목이다. 오가는 한국의 운전사 모두가 길옆에 잠시나마 명복을 비는 모습에 콧등이 시큰 저려온다.
그러나 「테헤란」-「반다르아바스」간 4천5백여리가 가슴아프고 피로에 젖는 길만은 아니다. 다리 밑의 「로맨스」도 있으며 때로는 「트럭」에 태워달라고 「차트루」(「아랍 특유의 여인 복장)의 보드라운 손짓도 있다.
운전사들 사이에는 젊은 여성인줄 알고 태웠다가 「차트루」 속에 할머니가 있음을 알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는 「에피소드」를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우리 운전사들에게는 철저한 출입금지 구역이지만 난간부근에 돌로 석탑처럼 쌓아 올린 다리 밑에는 여자들의 교태가 기다린다고―. 「이슬람」국가기 때문에 더욱 「오아시스」와 같은 휴식처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무더위 덜려고 수영복 차림>
종착지 「반다르아바스」를 얼마 남기지 않은 이름 모를 「오아시스」도 한국인 운전사로 초만원. 짐을 싣고 올라오는 운전사들은 아예 윗통을 벗어붙인 채 짧은 바지차림이 시원하다. 이곳에서 만난 PIC소속 운전사들은 「유니폼」도 깨끗하고 운전석 뒤에는 2층으로 된 침대가 있어서 부러움을 자아낸다. 한국운전사에게는 가장 험한 일만 배당되며 그에 비해 봉급은 높지 않으니 그렇다면 서울에 그대로 남아있는 편이 훨씬 좋지 않느냐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모두가 수긍이 갈만한 이유 있는 말임에 틀림없다. 심지어 현재와 같은 운전사의 진출이라면 앞으로는 재고해야만 한다는 강경론이 전혀 사실무근한 것도 아니다. 결국 「오아시스」에서의 일대 토론은 어느 나이 지긋한 운전사의 말처럼 점진적인 정책만이 가장 현명하다는 결론으로 끝나고 말았다.
우선 누구나 주행거리에 관계없이 계약대로 봉급을 받아야 하며 그 다음에 휴식문제·건강문제·숙소문제를 하나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매달 4백「달러」의 송금에는 그만한 각오가 필연코 뒤따른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테헤란」에서부터 「반다르아바스」로 내려가는 운전사들은 「잠바」와 긴 바지를 벗어 던진 채 하나같이 수영하러 가는 차림으로 변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참기 어렵다는 「페르샤」만의 무더위가 기다리고 있으니 사전대비를 게을리 할수가 없다.

<4일만에 천8백㎞ 주파>
나뭇잎 하나 볼 수 없었던 어제와는 달리 바위 사이사이에 소나무며 선인장이 덩그러니 심어져있고 벼랑길에서 풀뿌리를 캐는 듯 흙을 뒤지는 검은 염소가 듬성듬성 보인다.
최동옥 운전사는 또다시 잠을 쫓기 겸해서 종착역에 도착하기 전까지 결론이라도 내리려는 듯 긴 이야기를 건네준다. 『결국 기대에 어긋나는 나라지만 이래저래 고생을 극복하면서 20만원을 송금하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비관도 낙관도 하지 말고 힘자라는 데까지 일해 나가자는 결론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곳에 진출하려는 운전사들에게는 무엇보다도 각오가 필요하며 침낭·「선글라스」·각종 조미료, 그리고 감기·몸살약 등이 취업에 필수조건이다.
차는 어느덧 소금으로 뒤덮인 산맥을 지나 하얀 평야를 꿰뚫고 있건만 황갈색 사막 위에 투영된 한국인의 얼굴이 사라지지 않는다.
드디어 「반다르아바스」.
「테헤란」 출발 4일만에 1천8백㎞를 주파한 끝에 도착한 종착지는 북「이란」과는 엄청난, 글자그대로 새로운 세계와 같은 열대의 항구가 눈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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