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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사는 지옥|방한수녀가 말하는 공산월남의 오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마치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처럼 모든 생활필수품은 품귀상태이며 대학은 문을 닫고 주민들은 강제 노동자가 되고 있습니다』.
「공산 월남」에서 6개월 동안 연금상태로 억류되었다가 풀려나 지난10일 우리나라를 찾은 「마리·르네·노아」수녀(38)는 공산월남의 생활상을 이렇게 전했다.
「마리」수녀는 2년 전 11월 「포어·드·샤르트」라는 「프랑스」「가톨릭」전도기관의 일원으로 월남에 파견되어 「사이공」의 남쪽입구인 「빈트리우」에서 전도활동을 하다 월남의 공산화를 맞았다.
그동안 「빈트리우」의 한 촌락에 꼬박 발이 묶여 있다가 공산정권의 외국인철수계획에 따라 10월22일 「사이공」을 떠나 「방콕」「홍콩」 일본을 거쳐 서울에 왔다.
한국에 봉직하고 있는 언니 「콜레트·노아」 수녀(41·「가톨릭」여학생회관장) 를 만나 기위한 것. 『사람들은 거의 강제로 농촌에 끌려가거나 이른바 「모범부락」에 「시찰」을 가야합니다.』 「마리」수녀에 따르면 「모범부락」이란 공산정부가 국민들을 재교육시키고 개간 등 강제노역에 종사시키기 위해 산간지방에 세운 부락이며 「시찰」이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먼 여행이다.
맨 먼저 이곳에 보내진 사람들은「티우」정권하의 관료들이나 장성급, 종군종교인들이었으나 최근엔 지식인·대학생·상인들까지도 포함된다고.
요즘 공산월남에서 가장 애를 먹는 것은 일용품의 부족. 「사이공」시내에는 그 많던 노점상이나 상인들이 씻은 듯이 없어졌는데 부유층에서 일용품을 완전 매점 해 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9월 들어 공산정부가 5백대1로 화폐개혁을 한 후 이런 사정은 더욱 악화됐다. 금과 「달러」를 모두 압수하고 그 대신 지급한 돈은 1가구 당 최고 2백「피아스트」.
이 때문에 생필품값은 4∼5배씩 뛰고 빵 등을 구하기 위해 TV·냉장고등 가구를 팔려고 내놓고 있으나 사려는 사람은 없다는 것.
공산화후 대학생들에게 내려진 첫 조치는 재등록과 과별재편성. 그 후 이들은 3천명 단위로 교수들과 함께 아무도 모르는 「모범부락」이나 농촌으로 보내졌다.
예외는 사범대학과 의대·간호학과 등 몇몇과에 불과하다. 사범대학교수와 학생은 『장래 교육자는 완전한 공산주의자라야 한다』는 이유로 1년 동안의 사상교육을 따로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중 많은 학생들은 자진퇴학한 후 농촌행을 자원하기도 한다고.
『지금 월남의 대학은 그 주인인 교수나 학생들이 외출한 채 텅 빈 건물만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마리」 수녀는 말했다. 따라서 지식인이나 종교인들의 활동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가톨릭」은 「미사」이외의 모든 집회가 금지되어 있다. 다른 마을에 가기 위해선 마을마다 지키고있는 경비군인들에게 4종이나 되는 통행증을 제시해야하기 때문에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도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형편.
그러나 공산정부가 교회를 무시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가톨릭」의 주간지와 월간잡지 1개씩의 발행을 허가하고 있으며 교회도 21년 전 북월남에서의 사태를 상기하여 신중히 대처하고 있다는 것.
「티우」정권말기에 민권운동에 앞장섰던 「탄」신부는 「사이공」에서 정원을 가꾸며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리」수녀는 1월초 고향인 「프랑스」의 「리용」으로 돌아가겠다고 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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