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면에 선 한·일 경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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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65년에 맺어진 한·일간의 청구권협정이 오는 17일로 만료됨으로써 한·일간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국교 정상화의 구체적 표현이었던 한·일 청구권협정은 묵은 관계의 금전적 청산이라는 뜻이 짙었기 때문에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것도 사실이다. 당시의 잘 잘못은 논외로 하고서라도 이제 우리는 지난 10년간의 관계를 냉철히 반성·평가하고 앞으로의 관계를 설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난 10년간의 한·일 관계는 정치적·경제적으로 많은 문제를 제기해 왔으며 국교 정상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국민적 차원에서는 그다지 석연한 관계로 발전했다고는 말하기 힘든 상태라 하겠다.
정치적으로 한국측이 바라는 바와 일본측이 추구하는 경향 사이에는 여전히 큰 거리가 메워지지 않고 있는 것이 숨길 수 없는 현실이며, 경제적으로도 더욱 많은 문제점을 제기시키고 있는 것을 피차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볼일이다.
우선 64년 이후의 한·일 경제 관계를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자본 협력의 양적 증대와 무역역조의 심화라고 할 수 있다. 64년 이후 일본에서 도입된 자본은 22억 7천만「달러」에 이르고 있는 반면, 같은 기간의 무역 역조폭은 무려 54억7천만「달러」에 이르고 있다. 일본의 협력이 과연 한국 경제의 성장에 얼마나 기여했으며 실리는 어느쪽이 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가를 새삼 깊이 평가해야 할 중요한 대목이다.
일본은 한국과의 사이에서 자본 협력의 2배 이상에 달하는 실속 있는 장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 상품의 대일 진출에 대해서는 갖은 명목을 붙여 저지적으로 행동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생사 수입, 「쓰무기」·다랑어 등의 수입 규제는 물론, 해마다 해태 수입에 대해서 갖은 규제를 서슴지 않는 실정이다. 이처럼 일본측이 호혜적인 입장에 인색하다가 보면 바로 그 때문에도 한·일 양 국민의 불신 풍조는 날로 증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의 경제 개발이 일본 자본과. 일본의 원료 공급, 그리고 일본의 무역 조직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 진실한 의미에서 우리가 일본의 막강한 경제적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는 사실을 지난 10년간의 경험은 여실히 반증하고 있다.
그러므로 청구권협정 기간이 만료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일본에 특별한 관계를 기대한다는 정신적 자세를 단호히 버리고, 앞으로는 그들의 경제적 영향력을 축소시켜 나가겠다는 기본자세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수명이 짧은 기술 도입, 원료 의존도가 높은 설비 도입 등을 적극적으로 억제 해야 할뿐만 아니라, 일본 무역상들의 상조직에 편승하지 않고서도 우리가 주체적으로 우리의 제품을 수출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내겠다는 기본자세를 가지고 자본 협력 관계를 엄격하게 전개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체의 노력으로 일본 경제의 영향력을 축소시켜 나가지 않는다면 한·일간의 무역 불균형을 시정해 나갈 우리의 노력은 영원히 축적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원래 호혜 평등의 교역 관계는 상호 영향력이 근사치에 접근할 때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대일 수입의존도 38.3%, 수출의존도 30%라는 숫자는 우리의 주체적 결정을 제약하는 원인일 수밖에 없다. 일본측이 한국에 불리한 무역 구조를 함으로써 우리가 보는 피해만큼 우리도 일본측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능력이 갖추어지지 않는 한 호혜 평등의 실질적인 보증은 기대키 어려운 것이다.
이제부터는 일본이 우리와의 관계에 있어 법률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한 의미에 있어서의 자유로운 교역 상대국의 하나에 불과하게 되었음을 상기하면서 한·일 관계를 냉철한 계산적 차원에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개선해 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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