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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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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안철수 의원(이하 경칭 생략)의 파괴력이 예전 같지 않다. 민주당과 손잡는 ‘고독한 결단’에도 중간 성적표가 영 말이 아니다. 신당 지지율은 ‘도로 민주당’ 수준으로 떨어졌고,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도 정몽준에게 밀렸다. 스타일도 구겼다. 신당 강령에서 6·15 선언과 10·4 선언을 빼려고 했다 하루 만에 손을 들었다. 합당의 절대적 명분이던 기초선거 공천 폐지도 위태롭다. “지방선거 말아먹자는 거냐”는 현실론에 흔들리고 있다. 정치판에선 “안철수가 가시밭길에 들어섰다. 이대로 끝나는 게 아니냐”고 수군거린다.

 아무래도 안철수의 판단 착오인 듯싶다. 성급하게 이번 지방선거에 승부수를 띄운 것 말이다. 총선·대선처럼 진짜 칼을 뽑을 자리는 따로 있다. 4년 전 지방선거에서 대승한 야권 입장에서 이번 선거는 수성(守城)이다. 잘해야 본전이다. 그가 서둘러 나선 것은 지난 대선 때 문재인에게 속절없이 밀린 트라우마 때문 아닐까. 그는 기존 정당의 조직력에 단단히 쓴맛을 봤다. 여기에다 “차기 대선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문재인을 의식하면 초조했을지 모른다.

 돌아보면 안철수는 스페셜 미니시리즈에 강했다. ‘무릎팍 도사’ ‘힐링캠프’ ‘청춘콘서트’로 컨디션을 끌어올리다 서울시장 후보의 ‘아름다운 양보’로 대박을 쳤다. 가공할 파괴력이었다. 안철수 태풍은 기압골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2011년 이명박의 지지율은 30.2%까지 떨어지는 등 바닥을 헤맸다. 여당은 친이와 친박의 패싸움으로 날을 지새웠다. 야당도 친노·비노(非盧)·호남끼리 내분을 겪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여의도에선 ‘방탄 국회’가 난무했다. 이런 비상식의 혼돈이 판칠 때 그는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상식 대 비상식’의 구도가 선명하게 돋보였다.

 그랬던 안철수가 지금은 일일드라마로 내려앉은 느낌이다. 더 이상 예능정치를 펼칠 TV 공간이 없다. 기압골의 배치도 불리하다. 박근혜는 50% 후반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자랑하면서, 웬만한 열대성 저기압은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균열 조짐도 없다. 오히려 야권 신당에서 안철수를 향한 내부 총질이 시작되고 있다. ‘역사인식의 빈곤’ ‘간철수’라는 표현까지 등장한다. 한명숙의 손때가 묻은 ‘노이사(이른바 노빠+이화여대+486)’ 중심의 비례대표를 손보려 하자 “대선 때는 비례대표제 강화를 공약하지 않았느냐”며 비수(匕首)를 들이댄다. 결말이 모호한 일일드라마는 시청률을 보장하지 못한다.

 문제는 뾰쪽한 돌파구가 안 보인다는 점이다. “다리를 불살랐다”는 다짐은 물거품이 되고, ‘백년 가는 정당’은 한 달을 가지 못했다. 야심작인 ‘정책 선거’도 시들하다. 그가 공을 들인 김상곤 경기지사 후보의 무상버스 공약이 그중 하나다. 세수가 부족한 마당에 이런 공약은 수권정당의 신뢰감만 떨어뜨릴 뿐이다. 정치적 상상력이 한계에 부딪힐수록 복지 포퓰리즘의 유혹은 커진다.

 안철수의 폭발력은 탈(脫)정치에 있었다. 엉망진창인 기성정치권 덕분에 반사이익을 챙겼고, ‘새누리당을 꺾어줄지 모른다’는 호남 유권자들의 막연한 기대감도 한몫했다. 그는 현실정치에 너무 깊이 들어왔다. “낡은 이념이나 진영논리와 싸우겠다”고 했지만 벌써 진영 싸움에 허우적대는 느낌이다. 핵심 측근인 최장집·김성식이 떠나면서 신비주의도 허물어졌다. 지난 주말 그는 신당 강령 때문에 광주에서 난생 처음 호된 질타를 받았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이다.

 안철수의 새 정치는 유통기한을 넘어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을까. 벌써 좌파 언론과 네티즌들도 그를 향해 칼을 갈고 있다. 정체성을 묻는 것이다. ‘강남 좌파’라는 조국 서울대 교수부터 가장 시퍼런 칼을 들이댄 적이 있다. “안철수는 이 땅의 민주화와 진보를 위한 흐름과 떨어져 있었다. 촛불이든 뭐든 같이 한 적이 없다.” 백색테러만큼 적색테러도 잔인한 법이다. 골육상쟁일수록 끔찍함이 더하다. ‘착한(?)’ 귀공자 맷집으로 버텨낼 수 있을까. 갈수록 안철수의 약발이 희미해지는 느낌이다. 다시 메시아로 부활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철호 수석논설위원